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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12 우승으로 한국야구가 9가지 소원을 풀었다. 저마다 마음속에 품었던 소망은 모두 현실이 됐다. 출전자체가 크게 내키지 않았던 낯선 대회.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의 대회 운영은 엉망이었고, 모든 것은 공동개최국 일본 입맛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한민국의 초대 우승이었다.
'작두 투수교체' 주역 선동열
선동열 코치에게 2015년은 가장 힘든 시기다. KIA 사령탑에서 갑작스럽게 사퇴한 뒤 야인으로 지냈다. 김인식 감독이 아니었으면 아마 투수코치 직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좋은 웃음만 띄던 그는 막상 경기에선 무서울정도로 냉정한 투수교체를 조언했다. 김인식 감독은 선동열 코치의 의견을 존중했다. 한박자 빠른 투수교체는 매번 기적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작두 탄 투수교체'는 한국야구의 약진 원동력이었다.
두산 김현수는 FA다. 이제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미 두산은 김현수를 꼭 잡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윤석민이 기록한 역대 최고액(4년 90억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된다. 사상 첫 100억원 돌파 가능성도 다분하다. 김현수는 이번 대회 대표팀 부동의 3번타자였다. 고비마다 김현수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미국과의 결승에서도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준 이는 김현수였다. 다양한 스타일의 투수들을 상대로 한국 최고타자다운 스윙을 했다. 메이저리그행 타진에도 이번대회 활약은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민 밉상의 반전, 오재원
오재원은 안티맨이 꽤 있는 선수다. 동작이 크고, 오버할 때도 있다. 몇 차례 불미스러운 일로 타 구단 팬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 19일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오재원의 반전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9회 대타 안타를 날렸다. 믿기힘든 대역전승의 주역이 됐다. 100만 안티팬은 '까임 방지권'을 기꺼이 허락했다. 너도 나도 '오재원이 우리편일 때의 묘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용규 마음고생 끝
사랑스런 부인과 아들이 대만으로 동행했지만 이용규의 방망이가 잠잠하자 이를 두고 불편한 시선들이 많아졌다. 끈질긴 타격으로 대변되는 '용규놀이'는 프리미어12에선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으려는 순간 다시 본 모습.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선취점을 뽑아내는 2루타를 터뜨렸다.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
차우찬, 삼성의 심장
삼성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은 해외원정도박 의혹으로 이번대회에서 갑작기 빠졌다. 이들 대신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장원준 임창민 심창민이 제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흐트러진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차우찬은 팀동료들을 대신해 역투했다. 탈삼진왕의 기개는 국제무대라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도 1⅓이닝 1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두산 선수들 파이팅, 대표팀을 깨우다
144경기를 마치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치러냈던 두산 선수들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양의지는 발가락 미세골절임에도 대표팀 합류를 원했고, 김재호 김현수 민병헌 장원준 등 두산 선수들은 대표팀에서도 자기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서로에게 힘이되는 동료가 있다는 것. 팀플레이의 핵심이다.
박병호 도쿄돔 신고식
21일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날린 박병호의 큼지막한 3점홈런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4-0에서 7-0으로 우승을 굳히는 축포이기도 했고, 박병호 스스로에겐 속상함을 떨쳐내는 아치였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으로 1285만달러라는 거액을 이끌어 냈지만 이번 대회에선 유독 아쉬운 장면이 많았다. 미네소타와의 연봉협상을 앞두고 이런저런 구설수를 털어내기에 충분했다.
역사에 남을 한일전
8강전이 끝난 뒤 자정에서야 준결승 일정이 확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한국대표팀. 이번 대회 조직위는 가장 큰 돈을 낸 공동개최국 일본 편이었다. 일본의 대회 도중 일정변경을 허락한 상태. 모든 것이 일본위주. 어쩔수 없이 사지로 끌려들어가는 듯했지만 준결승에서 태극전사들은 9회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준결승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기쁨은 두배, 세배였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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