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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들이 출전한 드림팀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제외한 국제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프로선수들이 대표팀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승을 차지했던 한국은 이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등 아시안게임만 4차례 우승했다. 올림픽에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9전승의 완벽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병역 혜택이 걸려있는 대회다. 확실한 당근이 있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제외한 다른 대회에선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를 우려한 것은 대표팀 구성부터 완벽하지 않은데다 동기 부여도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기존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윤석민 양현종 류현진 오승환 등이 빠졌고, 타선도 메이저리그의 출전 불가 정책으로 추신수와 강정호도 빠졌다. 해외 원정 도박 의혹을 받은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마저 빠지며 마운드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마운드가 그리 좋지 않아 타선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0대5로 패하며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믿었던 에이스 김광현이 일찍 무너졌고, 타자들이 일본 선발 오타니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 약한 마운드는 어쩔 수 없지만 타선이 터지지않은 것이 더욱 걱정을 낳았다.
하지만 대만으로 넘어온 한국은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도미니카공화국전서 7회 이대호의 역전 투런포를 시작으로 타선이 터지기 시작했다. 10대2의 승리를 거둔 한국은 이어진 베네수엘라전서는 13대2 7회 콜드게임승을 거두면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치를수록 타선보다 마운드의 힘이 더욱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체멤버로 뽑힌 장원준이 의외의 호투를 선보였고, 차우찬 정우람 정대현 이현승의 불펜진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했다.
일본과의 4강전서 한국은 초반 3점을 내줬지만 이후 1점도 내주지 않으면서 기회를 엿봤고 결국 9회초 극적인 역전극을 만들었다. 마지막 미국과의 결승전서도 선발 김광현-임창민-차우찬-정대현-이현승이 미국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8대0의 완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8게임을 치르는 동안 70이닝을 던져 19실점(15자책)을 해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했다. 8강에서 탈락한 캐나다(1.83)에 이어 전체 12개국 중 2위에 올랐다.
당근이 하나도 없는 대회에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급 선수들이 열심히 해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병역혜택이 걸려있지 않은 대회라 대표 선발 때부터 많은 스타급 선수들이 출전을 꺼려하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병역 혜택이 걸려있다면 병역 미필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할테지만 병역 혜택이 없는데다 자칫 부상 당해 내년시즌에 지장을 받으면 자신의 성적과 연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차라리 안뽑히는게 낫다는 것. 그러나 이번대회에선 예상외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하듯 선수들이 똘똘 뭉쳤다. 첫 경기인 일본전 패배가 선수들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재대결이 벌어진 일본과의 4강전서 통쾌한 역전극을 만들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두번째 국제대회 우승이다. 지난 2009년 한화 이글스 감독을 한 이후 5년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적절한 투수교체와 대타 작전 등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다시한번 국민 명장임을 입증했다. 현역 감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표팀을 지휘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앞으로 국가대표 감독 선발 정책의 변화도 이끌 수 있을 듯.
우승이란 기쁨과 함께 오타니 쇼헤이를 보면서 일본의 꾸준한 스타 발굴에 부러움을 가지기도 한 이번 프리미어12는 한국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해준 대회였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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