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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대역전극을 펼친 19일 일본 도쿄돔.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0-3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4대3으로 뒤집었다. 9회 마지막 공격에 믿을 수 없는 화력으로 역대 한일전을 통틀어 가장 짜릿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흔히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라고 한다. 약 7㎝ 지름의 야구공을 한쪽이 던지고 다른 쪽은 때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닌, 양 쪽 벤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 싸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여기서 우리는 8회까지 완패였다. 차라리 쿠바와의 8강전에서 졌다면. 도쿄로 오지 않았다면. 이 같은 생각이 들만큼 한국야구의 자존심이 뭉개지고 있었다.
그 때 9회초 양의지 대신 대타로 등장한 오재원이 모든 걸 바꿔놨다. 투수가 와인드업 하기 전부터, 볼카운트 2B2S에서 포크볼을 밀어쳐 좌전안타를 때리고 1루를 밟는 순간까지. 앞선 동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상대를 적절하게 자극시키면서 흔들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모습에 일본은 약이 올랐을 것이다. 3개의 아웃카운트 채워 빨리 경기를 끝내야 하는데 대타로 나온 왼손 타자가 교묘히 시간을 끌고 있었다. 특히 헛스윙을 한 뒤에는 다시 '거창하게' 준비 동작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했다. 앞선 이닝까지 접하지 못한, 결코 얌전하지 않은 한국 선수였다. 그리고 5구째 타격 결과마저 환상적인 배트 컨트롤을 이용한 좌전 안타. 이 과정에서도 오재원은 1루로 뛰어가며 주먹을 불끈 쥐는 세리머니를 했다. 0-3으로 뒤지고 있는 팀에서 고작 1개의 안타 쳤을 뿐인데 홈런을 친 듯한 과격한 동작을 취했다. 그것도 일본 벤치를 살짝 바라보면서. 이는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의도적인 동작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오재원의 의도는 적중했다. 손아섭의 중전 안타, 정근우의 1타점짜리 좌월 2루타, 이용규의 몸에 맞는 볼, 김현수의 밀어내기 볼넷, 이대호의 2타점짜리 좌전 안타가 줄줄이 이어지며 경기를 뒤집었다. 믿기 힘든 4득점. 오재원은 비록 돌아온 타석, 2사 만루에서 가운데 담장 바로 앞에서 잡히는 큼지막한 플라이로 타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뽑히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이 같은 맹활약에 오재원을 향한 삐딱한 시선도 앞으로는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안티 팬을 보유한 선수 중 하나다. 평소 야구와 승리밖에 모르고 경기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몇 차례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산 내에서 타고난 센스, 악바리 등의 소리를 듣는다. 반대로 타 구단 팬들에게는 꽤 많은 욕과 비난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로 오재원의 진심이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원래 이런 스타일의 야구를 하는 선수다.
돌이켜보면 정근우도 국제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안티 팬의 마음을 돌렸다. 그는 SK에서 뛰던 시절, 타구단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에 일조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지금도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제 오재원 차례다. 평소 1회부터 모든 걸 쏟아 부어 7회쯤 되면 종종 탈진 증상을 보인다는 두산의 주장. 정확히 셀 순 없지만 수 많은 안티 팬이 비로서 그의 경기력과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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