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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부순 3인 이승엽-유희관-해커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5-09-06 11:04


사람들이 어? 하며 고개를 꺄우뚱하는 경우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다. 일상의 패턴을 바꾸는 그들. 올해 KBO리그엔 유난히 그런 선수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불혹에 타격을 만개시키고 있는 삼성 이승엽, 시속 120㎞대 직구로 다승 1위를 질주중인 두산 유희관, 한국무대 3년차 뒤늦게 웃고있는 NC 외국인투수 해커는 발군이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있다.


◇올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삼성 이승엽과 NC 해커. 둘은 8월 최고 타자, 최고 투수상을 받았다. 스포츠조선DB
신인 유격수 넥센 김하성이 타율 0.296, 17홈런, 68타점을 기록하고 삼성 신인 구자욱이 타율 0.348에 내외야 수비를 넘나드는 것도 참 대단하지만 이승엽은 스토리를 넘어 신화를 만들고 있다. 이승엽은 올시즌 타율 0.346(76위), 151안타(4위) 26홈런(6위) 89타점(14위)을 기록중이다. 개인통산 최고타율 경신이 유력하다. 타자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세월이 쌓이면 배트스피드가 느려지고 유연성, 순발력도 점점 하향세다. 이승엽은 꾸준한 훈련으로 시간과의 전쟁을 수행중이다. 전술도 바꿨다. 콤팩트 위주의 스윙으로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타고난 손목 힘과 파워 덕분에 짧게 휘둘러도 정타로 이어지니 장타 손실도 거의 없다.

일본에서 활약할 당시 이승엽은 최고의 순간도 맛봤고, 고통의 시절도 느꼈다. 일본 시절 막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지금의 성과가 퇴색되진 않는다. 일부에선 일본에서 망가졌던 이승엽이 한국에서 잘 치는 것은 그만큼 한국야구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승엽은 좋지 않은 흐름에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 2012년은 버텼지만 2013년 크게 부진했다. 한국야구 수준이 낮았다가 갑자기 높아져서가 아니다. 이승엽이 다시 반등한 것은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대처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한 측면이 크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3시즌 동안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2005년 지바롯데 시절 30홈런, 2006년 요미우리로 옮겨 41홈런, 이듬해 30홈런을 때렸다. 현미경 야구와 집요한 약점 공략이 특징인 일본야구는 선수 파악에 3년이나 걸리지 않는다. 이승엽의 컨디션과 체력, 마음가짐, 부상 등 내부 요인이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는 프로 21년차 이승엽에게 있어 탁월한 한해로 기억되고 있다.


◇시즌 개막에 앞서 누구도 유희관을 다승왕 경쟁자로 인식하지 못했다. 유희관은 KBO리그에서 가장 볼은 느리지만 가장 많은 승수인 17승을 기록중이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8.29.
유희관은 매경기 살얼음을 걷는 사나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강속구 투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는 그날 그날 컨디션 영향을 덜 받는다. 볼이 좀 가운데로 몰렸다 싶어도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반면 제구력 투수(구속이 느린 투수)는 매경기 살얼음을 걸어야 한다. 불안 불안하다. 어떻게 매일 컨디션이 최고일 수 있나"라고 했다. 유희관은 17승으로 다승 1위다. 직구 최고구속은 135㎞를 넘지 않는다. 직구 평균구속은 127~128㎞ 정도로 봐야 한다. 웬만한 투수의 슬라이더 구속과 엇비슷하다. 매경기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이끌고 있다. 한순간 방심하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은 '작두 타는 심정'이지만 유희관은 마운드 위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 평안하다. 더 이상 유희관의 성과를 두고 요행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뭐든지 '반복되면 실력'이다.

NC 외국인투수 해커는 올해 16승5패(다승 2위) 평균자책점 2.92(2위)로 팀을 이끌고 있다. 외국인투수에게는 '3년 고비설'이 있다. 3년쯤 되면 타자들의 눈에 익어 성적이 곤두박질 치기 쉽다는 얘기다. 눈에 익지 않으면 타자보다는 투수가 유리하다. 투수도 타자의 성향을 알면 대처가 쉽긴 하지만 투수의 투구패턴은 최소 몇 번, 몇 십번은 봐야 눈에 들어온다. 해커의 투구동작은 굉장히 특이하다. 셋업에서 피칭까지 템포를 조절하고, 꺽이는 듯 숨겨져 나오는 특이한 팔동작을 취한다. 타자가 배팅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그래도 자주 보면 눈에 들어온다. 해커는 3년차다. 2013년 4승11패, 지난해 8승8패. 버리려다 고민끝에 다시 기회를 줬다. 연봉 40만달러(퇴출된 찰리는 100만달러, 테임즈도 100만달러)에도 본인은 감지덕지였다. 해커는 살아남겠다며 의지를 불태운 끝에 올해 환골탈태했다. 지난 2일 삼성전에서 3이닝 동안 7실점으로 무너졌지만 1회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금 느슷한 수비 플레이가 나오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해커가 없었다면 NC는 지금 2위는 힘들었을 것이다. NC관계자들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을 때부터 해커는 의욕이 넘쳤다. 하고자 하는 승부욕과 철저한 시즌 준비가 올해 성과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해커를 통해 더 명확해졌다. 맹활약한 외국인선수도 성과에 만족해 게을러 진다면 설 땅은 좁아진다는 사실 말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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