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프로야구 히어로 두 명은 한화 투수 탈보트(32)와 kt 타자 하준호(26)였다. 2실점 완투승과 멀티홈런이 좋은 기록이지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다. 이들이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기에 활약이 돋보였다. 친정팀만 만나면 펄펄 나는 선수들. 그리 낯설지 않다. 사령탑은 일부러 해당 선수를 친정팀에 전진배치하기도 하고, 선수 본인도 칼을 간다. 결과도 나쁘지 않을 때가 많다. 비결은? 첫째 정보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상대를 잘 알기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의지 쪽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버림받았다는 박탈감이 오기를 발동시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프로야구에 스토리텔링이 덧입혀지면 승부세계에 이야기가 넘쳐나고 감동도 커진다.
9일 경기에 앞서 탈보트는 삼성 코칭스태프, 삼성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덕아웃까지 찾아 포수 이지영과 웃으며 대화도 나눴다. 2012년 삼성에서 14승3패를 거뒀던 에이스. 이제는 한화선수가 됐다. 역투끝에 시즌 5승째(3패)를 거둔 뒤 "뛰었던 팀이라 만감이 교차했지만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외국인선수는 프랜차이즈 개념이 국내선수에 비해 덜하다. 탈보트는 철저한 시장논리에 의해 팀을 떠났다. 계속 잘 던질 수 있는데 삼성이 잡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아팠고, 부진했기에 놓아줬다. 그런데도 탈보트에게 삼성은 의미있는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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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탈보트. 삼성전에서 첫 완투승을 했지만 사실은 최근 4경기(4연승)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피칭 밸런스도 좋아졌고, 구위도 확 달라졌다. 9일 경기는 나아진 구위에 친정팀 효과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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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를 졸업한 '부산 사나이' 하준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롯데에 대한 서운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지난달 2일 대규모 트레이드 때 롯데에서 kt로 갔다. 박세웅과 장성우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후 하준호는 kt타선에 불을 지폈다. 트레이드 직후 "나는 롯데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9일 부산을 처음 찾자마자 멀티홈런으로 친정팀을 혼낸 뒤엔 "트레이드를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친정팀을 상대로 잘하는 이유를 정보력보다는 정신력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FA를 앞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정신무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아파도 참고, 하고자하면 집중력은 좋아진다. 팀을 옮긴 선수들도 이런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 부담감으로 몸이 경직되는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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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하준호는 9일 경기에서 친정팀 롯데를 상대로 멀티홈런을 뿜어내며 펄펄 날았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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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팀에 대한 정보를 논하자면 오히려 친정팀이 해당 선수에 대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지난달 1일 한화 유먼은 처음으로 친정팀 롯데를 상대했다. 롯데 선수들은 무릎이 좋지 않은 유먼을 상대로 자주 번트를 댔고, 유먼은 수비 실수로 위기를 자초했다. 상대의 약점을 잘 알기에 이를 물고 늘어졌다. 유먼은 당시 3⅓이닝 동안 5실점하며 조기강판됐다. 경기후 유먼은 "상대 약점을 파고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롯데는 번트를 잘 대지 않는 팀이었는데"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프로야구는 물밑정보 싸움이 대단하다. 비디오분석과 원정전담요원이 미리 상대팀 전력분석을 끝낸다.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로 투수들의 투구패턴, 승부구, 습관, 타자들의 볼카운트별 스윙스타일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때로는 자신이 몰랐던 버릇을 상대팀이 먼저 알 때도 있다.
FA가 돼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적하는 것을 제외하면 늘 짐을 싸는 선수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정말 필요한 선수였으면 나를 보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소속팀과 재계약에 실패한 뒤 다른팀으로 간 외국인선수(유먼, 옥스프링, 스나이더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각은 보란듯이 활약해 내 존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특별한 인연 때문에 과하게 언론과 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측면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적생의 자존심 싸움은 분명 존재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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