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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어미사자 김성근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5-05-05 17:37 | 최종수정 2015-05-06 07:04



"고비만 넘기면 될거라고 말씀해주셨다."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시즌 첫 맞대결이 열린 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묘한 일정 탓에 양팀은 개막 후 1달이 훨씬 지나서야 첫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그렇게 스승과 애제자인 한화 김성근 감독과 kt 조범현 감독이 사령탑으로 공식 첫 만남을 갖게 됐다.

김 감독과 조 감독의 인연은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감독은 김 감독 밑에서 96년부터 3년동안 감독과 선수로 야구를 배웠다. 이후 조 감독은 김 감독의 치밀한 분석 야구를 바탕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왔다. 김 감독의 야구 스타일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김 감독도 조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인정한다.

조 감독이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후 팀을 떠나며 그 바통이 김 감독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99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스승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돌고 돌아 한화와 kt의 감독이 돼 다시 만났다. 경기 전 조 감독이 김 감독의 감독실을 찾아 인사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긴 시간 이어졌다. 조 감독은 "감독님께서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 잘하고 있는데 경기마다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는게 안타깝다고 하셨다. 고비만 넘으면 앞으로 잘할 수 있다고 파이팅을 외쳐주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서로 격려를 할 수는 있지만 봐줄 수는 없는 법. 운명의 장난일까. 공교롭게도 경기 내용이 김 감독이 지적한 것과 딱 들어맞았다. kt는 1회 모처럼만에 4번타자 김상현이 선제 스리런포를 날리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선발 정대현이 1회말 곧바로 상대 김경언에게 동점 스리런포를 내줬다. 경기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첫 번째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후 실책에 발목이 잡혔다. 2회 심우준의 내야땅볼로 다시 1점을 앞서나갔다. 하지만 3회 3루수 마르테의 결정적인 실책이 4-5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날 옆구리 부상을 털고 1군에 복귀해 타석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평범한 땅볼타구 2개를 가지고 실책을 범한 마르테의 수비는 아쉬웠다.

결정적 실책은 8-5로 앞서던 5회말 나왔다. kt는 4회 3점, 5회 1점을 내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동안 상대에 역전을 허용하면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마르테와 트레이드로 합류한 하준호 등 새로운 얼굴들이 맹활약하며 다시 8-5로 앞서나갔다. 그동안 kt가 보여주지 못했던 힘. 기분 좋은 역전승을 거두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투수 김민수가 연속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kt는 심재민, 고영표, 이창재 등 투입 가능한 필승조 투수들을 모두 내보내며 어떻게든 상대에 흐름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탄 한화 타선을 막기 쉽지 않았다. 8-8 동점까지는 괜찮았다. 1사 1, 2루 위기서 바뀐 투수 이창재가 이성열을 삼진 처리했다. 큰 위기를 넘기는 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일이 터졌다. 경기 도중 대주자로 나섰던 베테랑 유격수 박기혁이 이용규가 친 땅볼 타구를 놓치며 만루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실책 하나가 경기를 갈랐다. 이어 타석에 등장한 정근우가 결정적인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여기서 경기는 끝났다. 김태균에게 쐐기 투런포까지 맞았다. 한화는 5회말에만 9점을 뽑았다. 없던 힘까지 짜내 승부를 벌이던 kt에게는 충격적인 패배였다.

스승은 제자에게 '고비를 잘 넘기면 잘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리고서는 그 어떤 패배보다 처참한 패배를 제자에게 안겼다. 어렵게, 어렵게 고비를 넘어 간절하게 바라던 1승을 거두려던 꿈을 뭉게버렸다. 여기에 확실한 마무리까지 해버렸다. 15-8로 앞서던 8회초 투수를 필승조 박정진으로 교체했고, 9회초에는 박정진이 1사 후 안타를 허용하자 마무리 권 혁을 투입했다.

사자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일부러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하는데, 김 감독은 이 승부를 통해 단순히 1승을 추가한 기쁨을 누리는게 아니라 조 감독과 kt 선수들이 무언가 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대전=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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