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나온 롯데 황재균에게 날아든 사구(몸에 맞는 볼)는 야구 불문율일까. 메이저리그가 원조격인 야구에는 불문율이 있다.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가 기본 개념이다. 홈런을 때린 타자는 오버스런 제스쳐나 베이스를 천천히 돌지 않는다. 이는 홈런을 허용한 투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팀 타자가 맞으면 투수는 상대 타자를 맞힌다.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에 도전하는 투수를 상대로 기습번트같은 치졸한 짓을 하지 말라. 이는 대기록을 열망하는 관중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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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찰 일이다. 받아들이기 좋은 것만 메이저리그 운운하는 한국 야구계 현실이 말이다. 한 예로 경기력은 한참 못 미치지만 연봉 얘기만 나오면 천문학적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비교한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문율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쌓인 데이터와 서로간의 인식 공유가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후반 10점차로 벌어지면 경기가 다시 뒤집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아주 드물다. 투수들이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한국야구는 다르다. 경기가 끝나봐야 안다. 마무리투수의 볼구속이 140㎞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인기팀도 있고, 막내구단 kt는 11연패를 끊던 지난 11일 6-0으로 앞서다 9회말 대거 4점을 주고 2사 1,3루 위기까지 몰리며 벌벌 떨기도 했다. 역대급 타고투저를 벗어나기 위해 야구의 근간인 스트라이크존 확대까지 논의한 한국프로야구다.
추신수의 은사로 유명한 더스티 베이커 전 신시내티 감독은 "큰 점수차 도루 상황은 종합적인 것이 고려돼야 한다. 예를 들어 쿠어스 필드(대표적인 타자 친화적인구장)에서의 5점차는 2점차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물며 메이저리그도 상대팀 능력을 봐가며 불문율을 적용한다. 12일 경기에서 롯데가 1회에 7득점했지만 안심하고 경기를 지켜본 사직관중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누구나 10일 경기의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재균은 불행중 다행으로 엉덩이에 볼을 맞았다. 머리나 팔꿈치, 무릎 등에 볼이 맞았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빅 유닛' 랜디 존슨은 10여년전 쯤 "야구인생 통틀어 직구로 상대 타자를 맞힌 경우 중 실투는 손에 꼽는다"고 했다.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뿌려댄 존슨이었지만 칼같은 제구력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동걸의 제구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겁만 주고, 경고를 하려다 자칫 잘못하면 한 동료는 야구인생 기로에 설수 있다. 빈볼도 아무나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