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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 빈볼은 야구 불문률 아니다[기자석]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5-04-13 08:15


지난 12일 나온 롯데 황재균에게 날아든 사구(몸에 맞는 볼)는 야구 불문율일까. 메이저리그가 원조격인 야구에는 불문율이 있다.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가 기본 개념이다. 홈런을 때린 타자는 오버스런 제스쳐나 베이스를 천천히 돌지 않는다. 이는 홈런을 허용한 투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팀 타자가 맞으면 투수는 상대 타자를 맞힌다.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에 도전하는 투수를 상대로 기습번트같은 치졸한 짓을 하지 말라. 이는 대기록을 열망하는 관중들에 대한 예의다.

큰 점수차 리드 상황에서의 도루 금지. 이것이 늘 문제다. 물증은 없지만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종합할때 황재균 건은 이에 해당된다. 지난 10일 한화와의 1차전에서 황재균은 8-2로 앞선 6회말 2루타를 친 뒤 3루 도루를 감행했다. 경기를 마친 뒤 양팀 주장인 롯데 최준석과 한화 김태균은 이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 12일 3차전, 황재균은 롯데가 1회말 7-0을 앞선 상황에서 또다시 도루를 했다. 이날 한화 투수 이동걸은 5회말 황재균이 타석에 들어서자 몸쪽 공을 두차례나 넣은 뒤 세번째는 기어이 엉덩이에 꽂았다. 앞선 타석에서도 초구에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황재균이었다. 유심히 볼 장면은 5회말 상황에서 포수는 바짝 황재균 쪽으로 붙어앉아 공을 요구한다. 빈볼 지시가 나왔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동걸이 스스로 맞히려 했다면 포수의 사전 위치이동은 이해되지 않는다. 김성근 한화 감독의 지시냐, 주장 김태균 등 고참 선수들의 지시냐는 중요치 않다. 과연 황재균이 잘못을 했고, 상대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인가.


5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6회말 2사 2,3루서 롯데 황재균이 삼진 아웃되고 있다.
부산=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4.05.
결론적으로 황재균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잘못이 있다면 기형적인 한국야구의 타구투저가 원흉일 뿐이다. 큰 점수차에서의 도루금지를 어겼기 때문에 한화가 기분나빴다면 기억력이 없어도 너무 없다. 10일 경기에서 6회말 8-2 리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것을 한화 선수단 자신들이 보여줬다. 한화는 당시 8회초에 1득점, 9회초에 5득점을 올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두팀은 연장 11회까지 혈투를 주고받으며 가까스로 롯데가 10대9로 이겼다. 12일 경기도 보는 관점에 따라선 천지차이다. 한화는 10일 경기에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 황재균이 또 개인기록을 쌓고자 도루를 감행했다고 본 것 같다. 롯데 입장은 다르다. 겨우 1회일 뿐이다. 8회와 9회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롯데 불펜을 감안하면 점수를 벌릴 수 있다면 더 벌려야 한다. 황재균은 정말 잘못을 한 것인가? 야구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랬다면 아마 여러명 사구를 받았을 것이다."

혀를 찰 일이다. 받아들이기 좋은 것만 메이저리그 운운하는 한국 야구계 현실이 말이다. 한 예로 경기력은 한참 못 미치지만 연봉 얘기만 나오면 천문학적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비교한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문율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쌓인 데이터와 서로간의 인식 공유가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후반 10점차로 벌어지면 경기가 다시 뒤집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아주 드물다. 투수들이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한국야구는 다르다. 경기가 끝나봐야 안다. 마무리투수의 볼구속이 140㎞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인기팀도 있고, 막내구단 kt는 11연패를 끊던 지난 11일 6-0으로 앞서다 9회말 대거 4점을 주고 2사 1,3루 위기까지 몰리며 벌벌 떨기도 했다. 역대급 타고투저를 벗어나기 위해 야구의 근간인 스트라이크존 확대까지 논의한 한국프로야구다.

추신수의 은사로 유명한 더스티 베이커 전 신시내티 감독은 "큰 점수차 도루 상황은 종합적인 것이 고려돼야 한다. 예를 들어 쿠어스 필드(대표적인 타자 친화적인구장)에서의 5점차는 2점차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물며 메이저리그도 상대팀 능력을 봐가며 불문율을 적용한다. 12일 경기에서 롯데가 1회에 7득점했지만 안심하고 경기를 지켜본 사직관중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누구나 10일 경기의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재균은 불행중 다행으로 엉덩이에 볼을 맞았다. 머리나 팔꿈치, 무릎 등에 볼이 맞았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빅 유닛' 랜디 존슨은 10여년전 쯤 "야구인생 통틀어 직구로 상대 타자를 맞힌 경우 중 실투는 손에 꼽는다"고 했다.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뿌려댄 존슨이었지만 칼같은 제구력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동걸의 제구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겁만 주고, 경고를 하려다 자칫 잘못하면 한 동료는 야구인생 기로에 설수 있다. 빈볼도 아무나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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