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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구단 미라클, 그들은 원더스가 아닌 미라클을 꿈꾼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3-04 11:00


독립야구단 미라클의 투수 배이준과 케빈 리가 홈구장인 연천베이스볼파크 메인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천=민창기 기자

한국야구에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다. 독립야구단 ISG Miracle(미라클)이 20일 공식 출범한다. 고양 원더스에 이어 두번째 독립구단이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자락에 위치한 연천베이스볼파크가 홈구장이고, 파크 내에 선수단 숙소와 식당이 있다.

"모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벼랑끝에서 죽기아니면 살기로 해보자. 감독, 코치를 믿지 마라. 시키는대로만 따라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미라클 창단을 주도한 박정근 구단주(60·호서대 체육대학 야구학과 주임교수)가 선수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ISG(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는 박 구단주가 대표로 있는 스포츠전문 비즈니스 벤처기업이다. 박 구단주는 "메인 스폰서를 찾고 있는데, 후원자가 나타나면 구단주직을 넘길 생각이다"고 했다.

프로야구를 빼면 아직도 척박한 한국야구 풍토에서 독립야구단 미라클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눈발이 휘날리던 3일 연천베이스볼파크를 찾아가 '미라클'을 꿈꾸는 미라클 사람들을 만났다.

고양 원더스 모델? 우리는 다르다

기존 리그의 지원없이, 영향권 밖에서 꾸려가는 독립야구단. 왠지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독립'이지만 그 속에는 도전과 무관심, 절박함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대다수 야구인, 팬들은 독립야구단 하면 고양 원더스를 떠올린다. 최초의 독립구단이었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야구 구루' 대접을 받는 김성근 감독을 내세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야구 마니아 재력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3년 간 운영됐던 원더스는 지난 해 말에 팀을 접었다. 사실 원더스를 독립구단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한 해에 수십억원을 쓰면서 프로야구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 참가했다. 대규모 해외 전지훈련을 진행했고, 외국인 코치에 외국인 선수까지 있었다. 1군 리그 진입을 생각했다가 어려워지자 팀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국야구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지만, 결국 원더스 모델은 실패로 끝났다.

한국야구에 독립구단, 독립리그 트라우마는 또 있다. 3년 전 KT와 경기도, 수원시가 10구단 창단-유치를 위해 독립리그 창설을 내세웠는데, 팀 출범 후 슬그머리 꼬리를 내렸다.


미라클은 원더스와 성격이 전혀 다른 팀이다. 구단이 선수들에게 급여를 제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수가 구단에 식비를 포함한 회비를 낸다. 8개월을 한 시즌을 하고, 선수가 매월 70만원(식비 50만원 포함)을 부담한다. 일단 유니폼 두 벌을 제공하지만 개인 장비는 대부분 선수가 구입해야 한다. 유니폼도 야구전문기업의 후원으로 마련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독립구단이면서 야구 아카데미 성격을 갖고 있다. 자유롭게 경기를 하면서 선수 육성, 트레이닝을 함께 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모델이다보니 쉽지 않은 환경이다. 실내 훈련장을 갖추지 못해 인근 헬스클럽을 빌려 사용해야 한다. 선수 부담금도 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부분이다. 우수창 단장(전 스포츠테레카 대표)은 우수 선수가 입단하면 장학금 성격으로 회비 면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렵지만 독립구단의 본분을 확실히 지켜나갈 생각이다. 박 구단주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창단 취지를 알렸지만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미라클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전 LG 트윈스 감독은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기에 합류했다. 선수들에게 후회없이 해보자는 당부를 했다"고 말했다.

도전, 도전, 또 도전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미라클, 기적이 필요하다. 2일 트라이아웃을 통해 팀에 합류한 선수가 투수 10명, 야수 6명, 총 16명이다. 19세에서 28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고 프로 출신에 미국 대학 출신도 있다. 3월 20일 공식 창단식까지 선수를 모집한다. 시즌 중에도 합류가 가능하다.

제도권에서 엘리트 야구 코스를 밟아 올라왔다면 독립구단에 입단할 이유가 없다. 대다수 선수가 좌절을 경험했고, 대다수 선수가 야구를 놓지 못해 미라클의 문을 두드렸다.


독립구단 미라클의 홈구장인 연천베이스볼파크 메인경기장. 중앙펜스까지 120m, 좌우 펜스까지 95m 사이즈의 구장으로 외야에는 천연잔디, 내야에는 인조잔디가 깔렸다. 연천=민창기 기자
프로야구가 중흥기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야구 전체로 보면 아직 저변이 허약하다. 선수층도 빈약한데 기반이 워낙 약하다보니 프로, 대학 아니면 다른 길이 거의 없다. 고교 졸업 후 프로팀 입단, 대학 진학이 안 되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 구조다.

박 구단주는 "미라클을 통한 프로 진출도 중요하지만 야구 저변 확대,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다. 선수들이 미라클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기량을 끌어올려 계속 야구를 하거나 관련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구단주는 소속 선수가 원하면 일본 독립리그, 필요하면 중남미 리그 진출까지 지원하겠다고 했다. 차후에 연천에 독립구단 1개를 더 만들고, 사회인야구의 직장팀 2개 이상을 독립야구단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독립리그 창설을 구상하고 있다.

눈에 띄는 선수도 있다. 우완 투수 케빈 리(23)는 고양 원더스를 거쳤다.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인 그는 로드아일랜드, 라마포 대학에서 야구를 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가 한계를 느껴 지난해 8월 원더스 얘기를 듣고 한국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사촌형이 원더스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합류 직후에 시즌이 끝나고 팀까지 해체돼 애매한 상황이 됐다.

3일 연천베이스볼파크 클럽하우스에서 마주한 케빈 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등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해 말 관심을 보인 국내 프로팀이 있었는데 국적 때문에 잘 안 됐다"고 했다.

고교시절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그는 직구 최고 94마일(152km)까지 던졌다고 한다. 국적 문제를 해결해 프로팀 입단이 가능해진 상황. 케빈 리는 "원더스가 해체된 후 미국으로 돌아가면 실패자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남았다. 미라클에서 한국 야구문화를 더 경험하고, 몸을 만들어 프로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우완 투수 배이준(19)은 고교를 자퇴하고 미라클을 선택한 케이스다. 포항중을 졸업하고 원주고 등 4개 학교를 거쳤다.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전학한 학교이 야구부 창단이 불발되면서 자퇴를 하고 미라클에 들어왔다.

미라클의 막내 배이준은 자퇴를 하면서 2년간 고교팀에서 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그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2년 후 프로팀 드래프트에 참가하거나 대학 진학을 하겠다"고 했다. 배이준의 아버지 배영택씨(49)는 "아이가 야구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좋은 분위기에서 계속 운동을 할 수 있게 돼 만족스럽다"고 했다.

구단 연고지인 연천군의 지자체 모토가 '미라클 연천'이다. 미라클에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김용민 독립구단 미라클 코디네이트 코치가 연천베이스볼파크 클럽하우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덕수고-단국대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김 코치는 호서대 외래교수 자격으로 선수들을 지도한다. 연천=민창기 기자
'미라클'이 필요하다

미래지향적인 독립구단인데 코칭스태프 구성이 빈약하다. 마해영 전 XTM 해설위원이 타격 코디네이트 코치, 투수 출신인 김용민 메이저리그 에이전트가 투수와 트레이닝 코디네이트 코치, 또 한화 이글스 출신인 김일훈과 최연오가 수비와 포수를 담당한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조태룡 단장이 자문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모두 호서대 외래교수 자격으로 팀과 함께 한다.

미시건주립대학교 스포츠심리학 박사인 박 구단주는 선수들을 상담하고 정신교육까지 할 예정이라고 한다. 불꽃같은 야구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도전이다. 박 구단주는 2004년 호서대에 야구학과를 개설해 화제가 됐다.

덕수고-단국대 야구부 출신인 김용민 코디네이트 코치는 "야구를 해 온 선수들이 계속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직 선수 파악을 확실히 하지 못했으나 잠재력있는 선수가 나올 것이다"고 했다.

출발 단계라고 해도 부족한 점도 눈에 뛴다. 코디네이트 코치는 주 1~2회 방문해 선수를 지도하는 인스트럭터 성격이다. 지속적인 관리, 육성이 필요한데 전담 지도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물론, 구단에서는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충원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선수 수급이 충분히 이뤄져야 원활한 경기 진행이 가능하다. 또 포지션별 안배도 필요하다. 1만원 이상의 후원자 10만명 모집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경기는 일주일에 2게임이 잡혀 있다. 월요일에는 원정, 금요일은 홈경기다. 박 구단주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지역 야구협회의 협조하에 대학, 고등학교 팀과 경기를 한다. 한화 3군 팀과 게임도 예정돼 있다. 대략 한시즌 60여경기를 계획하고 있다. 나머지 주중 3일은 연천베이스볼파크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사회인야구팀을 위해 구장을 비워줘야 한다. 구단은 후원자가 제공한 서울과 부산, 제주 지역 오피스텔과 아파트 4곳을 선수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선수단 식당 쌀은 연천 지역 주민들이 무료로 제공한다.

미라클이 지향하는 새로운 길을 주의깊게 지켜보자. 많은 야구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연천=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독립구단 미라클의 투수 배이준과 케빌 리가 연천베이스볼파크 내 선수단 식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천=민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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