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패배였다. "흠씬 두들겨 맞았다"고 해도 될 정도의 완패. 그런데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73)은 이걸 오히려 "차라리 잘됐다"고 한다. 왜 일까.
|
하지만 이건 과거의 일이다. 이제 김 감독은 한화의 사령탑이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간 열과 성을 다해 한화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런데 '새 제자'들이 '옛 제자'들에게 완벽하게 깨졌다. 비록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고는 해도 뜨거운 승부사 본능을 지닌 김 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할 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이날 패배에 대해 "차라리 많이 맞으며 진 게 잘 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선발 정대훈(3이닝 무실점)의 성장을 확인한 건 소득이었다"고 했다. 이는 김 감독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화 전력분석 코치이자 김 감독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김정준 코치마저도 "지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이렇게 안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깨닫고 배울게 많다"고 평가했다.
지금의 한화에는 오히려 이런 독한 방법이 맞다. 이날 경기에 나선 한화 멤버들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투수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날 경기에 나선 한화 선수들은 전부 2군급 멤버들이었다. 주전 유격수로 나선 박한결은 신고선수다.
반면 SK는 박계현(1번 2루수)-조동화(2번 중견수)-박재상(3번 좌익수)-박정권(4번 1루수)-브라운(5번 DH)-임 훈(6번 우익수)-김연훈(7번 3루수)-김민식(2번 포수)-나주환(9번 유격수) 등으로 선발 라인업이 구성됐다. 당장 1군 경기를 치러도 부족하지 않을 정예 멤버들이다.
결국 이날 SK에 완패를 당한 한화 멤버들은 혹독하게 실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선수들이다. 냉정히 말해 이들의 실력은 SK 정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 완패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중요한 건 이 패배를 통해 한화의 2진급 선수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느냐다. 이들이 뼈아픈 패배를 계기로 성장의 실마리를 발견해야만 한화 선수층이 좀 더 두터워질 수 있다. 거기서부터 강팀의 면모가 갖춰진다. 속이 쓰린 패배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차라리 잘 됐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