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승부는 내년이다."
윤석민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3년간 총액 575만달러(옵션 포함 최대 1325만달러)에 계약했다. 그러나 올시즌 윤석민은 메이저리그에서 겨우 2경기만 뛴 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계속 트리플A 노포크 타이즈에서 뛰었다. 노포크에서는 23경기(선발 18경기)에 나와 4승8패,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했다.
2011년 KIA 에이스로 한국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윤석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라한 성적이다. 윤석민은 "올시즌의 나를 평가한다면 솔직히 '빵점'이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성적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만큼 평범한 공밖에 던지지 못했다"면서 "만약 미국에 안가고 한국에서 FA가 됐더라면 지금쯤 'FA 먹튀 1위' 타이틀은 내가 차지했을 것이다. 솔직히 너무 공을 못 던졌다"고 했다.
윤석민은 "성적은 안좋았지만, 후회는 정말 하지 않는다. 많은 경험을 했고 분명히 그런 시간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직 내게는 도전할 시간이 있다"며 올해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
그렇다면 올해 왜 이렇게 힘겨운 시즌을 보내야 했을까. 윤석민은 "핑계댈 게 없다. 그냥 내 실력이 그 정도였을 뿐"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다시 물었다. 그래도 생각하는 실패요인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윤석민은 "결국은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게 큰 이유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계약을 기다리면서 운동도 많이 못하고, 몸도 잘 못만들었다. 여러가지로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에 간 셈이다. 반면 메이저리그 시스템은 선수들이 일찍부터 몸을 만들어 스프링캠프에 참가한다. 그리고 거기서는 공을 많이 안던진다. 내가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피칭을 많이 하는 걸 코칭스태프가 싫어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지 코치들이 내가 좋았을 때와 안좋았을 때의 모습을 못 본 상태라 밸런스가 안맞을 때 도움을 별로 못 받았다. 결국 나혼자 계속 폼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너리그 경기 때도 계속 발버둥을 쳤는데, 제대로 안됐다. 어깨도 많이 열리고, 릴리스 포인트도 뒤에서 나오고. 그러다보니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몸이 안만들어진 상태에서 폼만 고치려고 하다보니 생긴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생각한대로 공을 던질 수도 없고, 코치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 그 속에서 윤석민은 혼자 고민하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건 끝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윤석민은 '0점짜리' 투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
달리다가 넘어진 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두고 삶에 대한 태도를 알아볼 수 있다. 주저 앉은 채 발에 걸린 돌부리나 고르지 못한 땅을 원망하며 포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 일어나 다시 앞을 향해 뛰는 사람이 있다. 성공의 확률은 당연히 후자쪽이 높다.
윤석민도 후자에 해당한다. 윤석민은 인터뷰 내내 "내가 못해서, 내 준비가 부족해서" 올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했다.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년에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찍부터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넘어졌지만, 벌떡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민은 "결국 몸에 힘이 있어야 좋은 공도 던질 수 있다. 힘은 없는데 폼만 생각하면 올해같은 실패를 하는 법이다. 구속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면서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KIA 마무리캠프에도 와서 훈련하는 것이다. 혼자 훈련하게되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어차피 여기서도 나 혼자 훈련하는 것이지만,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게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미 윤석민의 체형은 2011년 최고의 성적을 냈을 때와 비슷해졌다. 그는 "올 시즌 중에는 살이 많이 붙었다. 음식 자체가 기름진 것들이라 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 뺐다. 지금은 92㎏ 정도 나간다. 2011년에는 87~88㎏였는데, 스프링캠프 때는 비슷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민은 되물었다. "다시 좋은 공을 던지게 되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많은 준비를 하고 내년이 되면 정말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나올 것 같다. 기대가 된다. 일단 계약서 상에 25인 로스터 진입이 포함돼 있으니 내가 좋은 실력을 보여주면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던질 수도 있다. 정말 내년이 기대된다"고 했다.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히 내년을 준비하는 윤석민의 모습에서 '희망'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윤석민은 더 큰 선수가 돼 있었다.
휴가(일본 미야자키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