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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부끄러울 수 있는 대패였다. 하지만 승부가 중요한 시합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다. 가슴 쓰린 패배였지만, 이 소중한 경험이 한국여자야구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격돌은 대회 개막 때부터 예상이 됐다. 두 팀의 전력이 가장 좋았다. 한국은 예선 A조에서 대만을 12대0, 인도 10대0, 홍콩을 21대0으로 물리쳤다. 일본 역시 예선 B조에 속해 호주를 24대0, 한국B팀을 13대0, 미국을 12대0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더욱 강한 팀이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 선수들이 뛰는 리틀야구 수준이라면 일본 선수들은 한국 남학생 기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생들의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수 차이도 컸다. 일본은 누상에 나가기만 하면 도루를 시도했다. 주자만 나가면 3루까지 진루는 기본이었다. 10점 이상 앞서고 있어도 자신들의 야구를 충실히 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도루를 전혀 시도하지 못했다. 일본 투수 레이나의 견제와 퀵모션도 좋았고, 무엇보다 일본 포수 아스카 츠지의 어깨가 좋아 횡사 위험 때문에 뛸 수가 없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 초반 크게 긴장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국제대회 결승전. 그것도 상대가 일본이었다. 선발 이유영이 긴장한 듯 전혀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 1회 안타 3개, 볼넷 4개를 내주며 무너졌다. 1회에만 10점을 내줬다. 긴장을 푼 한국 선수들은 3회 무실점 이닝을 만드는 등 분전했다. 하지만 확실히 실력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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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의 감격 적시타, 한국여자야구 발전의 시작
하지만 결과를 갖고 전혀 실망할 필요는 없다. 냉정히 말해 한국 대표팀이 이겼다면 이상할 경기였다. 일본 대표팀은 오사카체육대학 재학생들로 팀을 꾸렸다. 기본적으로 운동 신경이 뛰어난 젊은 선수들이다. 여기에 체계적인 훈련까지 소화한다. 올해 열린 여자야구 클럽팀들의 국제 경기인 홍콩 피닉스컵에 처녀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반면, 우리는 생업이 있고 취미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날 경기 두 번째 투수로 나와 3⅔이닝을 던진 투수 강정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투수 명현삼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고 우익수로 교체출전한 서혜림은 영양사로 활동하고 있다. 열악한 현실상 국가대표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상은 그저 야구가 너무 좋기만 한 일반인 여성들과 다름 없다.
그래도 국내에서 열리는 첫 국제대회를 앞두고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했다. 그리고 값진 결과물도 얻었다. 패했지만 4회말 연속 3안타가 나오며 이날 경기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다. 사실상 어떤 상대에도 실점할 가능성이 적었던 일본을 상대로 대회 첫 실점의 아픔을 안겨준 것이다. 유경희-이민정-김미희가 완벽한 타이밍에 연달아 중전안타를 터뜨려 대표팀은 영봉패를 면할 수 있었다. 0-14에서 1점을 따라가는 점수였지만 한국 선수들은 환호했다. 민망함 따위는 없었다. 그만큼 이 1점이 자신들에게 값진 성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열악한 여자야구 환경이지만 이런 국제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고 다양한 상대들과 경기를 치러봤다는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선수들이 좋은 경험을 쌓고 앞으로 더욱 체계적인 훈련을 이어간다면 우리 여자야구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이천=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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