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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고효준, '느림의 미학' 유희관에게 배운 것은?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4-05-20 19:46 | 최종수정 2014-05-21 06:34



"똑같이 100%로 던지는데 유희관에게선 자신감이 보였다."

하위권으로 추락한 SK 와이번스의 반가운 복귀 소식이 들린다. 좌완 고효준(31)이 19일 저녁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보직은 선발이다. NC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혹은 주말 LG와의 홈 3연전 중에 선발등판할 예정이다. 강습타구에 맞아 오른쪽 새끼손가락 중수골 골절상을 입은 윤희상의 빈 자리를 채운다.

지난달 29일 공익근무를 마친 고효준은 2군에서 두 차례 등판했다. 지난 14일 LG전에서 2⅔이닝 무실점, 18일 경찰청전에서 4이닝 무실점으로 실전감각을 조율했다. 하지만 고작 실전을 두 차례 치렀을 뿐이다. 다소 이른 복귀다.

혼자 벽에 공 던지며 한 재활, 철저한 준비로 조기복귀

조기 복귀까지는 고효준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고효준은 군입대 전부터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공익근무 후 복귀가 늦어지는 선수들을 많이 봐왔기에 '남들과 다르게 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고효준은 군입대 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 150㎞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리는 좌완 파이어볼러, 부상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고효준 역시 군입대에 맞춰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팀에 있는 게 아니라 체계적인 재활은 힘들었다. 고효준은 이를 악물고 혼자 재활에 매달렸다. 매일 근무를 마치고 준비한 운동을 소화했다. 수술 후 재활 과정에선 ITP라고 불리는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을 밟는데, 고효준은 이를 혼자 해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보통은 공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난 함께 할 선수가 없으니 '벽치기'로 ITP를 했다. 단계별로 공을 던져야 하는 거리가 있는데 벽에서 몇 미터나 되나 거리를 재고, 혼자 벽을 향해 공을 던졌다"고 털어놨다.


가뜩이나 힘들다는 재활 과정을 홀로 고독하게 이겨냈다. 고효준은 "빨리 복귀하고 싶다는 것보다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며 힘들었던 재활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좌완 파이어볼러 고효준은 군입대 전 SK 마운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2009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때 고효준의 모습.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보직에 대한 생각은 없다. 팀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곳에서 던지면 그만이다. 현재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고효준은 "내가 언제부터 보직을 가렸나. 아직 예전의 100% 컨디션 느낌은 아니다. 80~90% 정도인 것 같은데 실전에서 던져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직 제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전 같은 모습은 줄지 않을까 싶다. 타자를 상대하는데 자신감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희관 통해 받은 영감,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팀을 떠나 있는 동안, 야구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다. 때론 팬의 입장으로, 때론 중계진의 입장에서 야구를 봤다. 그는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 몰랐던 부분이 보였다. '이 카운트에서 뭘 던질까' 같은 생각을 한다. 나도 모르게 해설을 하고 있더라"며 웃었다.

멀리서 보면서 인상 깊은 선수도 있었다. 바로 같은 왼손투수인 유희관이다. 유희관은 직구 최고구속이 130㎞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칼날 같은 제구력으로 '느림의 미학'이란 별명을 얻었다. 다소 제구력이 떨어져도 강속구를 던지는 고효준과는 대척점에 있는 투수다.

고효준은 "유희관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저런 스피드도 상대를 이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볼의 무빙이나 컨트롤이 워낙 좋더라"고 말했다.

자신과는 정반대인 유희관을 보면서 느낌 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유희관은 폼은 100%인데 그런 구속이 나온다. 나도 유희관도 똑같이 100%로 던지는데 그렇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타자들은 같은 100%라고 느낀다. 유희관에게선 자신감이 보인다"고 밝혔다.

단점인 불안한 제구를 잡아야 하나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타자들이 자신을 무서워할 수 있는 장점이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효준은 "내 특색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다. 예전엔 의도적으로 안 맞으려고 던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차라리 맞을 거면 맞자는 생각으로 던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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