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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책 유발자'란 표현이 정확하다. 빠른 발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다.
KIA 타이거즈는 개막 후 8경기에서 정확히 5할 승률을 기록했다. 4승을 거두면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바로 이대형이었다.
FA로 고향팀인 KIA에 새 둥지를 튼 이대형, 계약 당시만 해도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빠른 발을 앞세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지만, 성장하지 못했다. 부족한 타격실력에 발목을 잡혀 주전 자리까지 뺏기고 말았다.
수준급 리드오프들의 연쇄 이적으로 FA 시장에서 반사 이익을 얻은 이대형은 시즌 초반 쾌조의 페이스를 자랑하고 있다. 아직 초반이지만, 이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이대형 영입은 분명 성공적이다. 이대형에게 투자한 금액은 4년간 24억원. FA들의 치솟은 몸값을 감안하면, 오히려 KIA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대형 본인도 그동안 부진으로 인한 자신에 대한 평가, 그리고 FA에 대한 시선 등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동기 부여가 확실한 시즌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면서 7일 현재 타율 3할7푼5리(32타수 12안타) 3타점 6득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팀내에서 가장 높은 출루율(4할2푼9리)을 자랑하고 있다.
이대형을 1번타자로 낙점하면서 KIA는 리드오프감 3명을 보유한 '스피드의 팀'이 됐다. 이범호의 타격감이 좋지 않아 최근 이대형-김주찬-신종길로 1~3번 타순을 꾸렸는데, 발 빠른 타자가 세 명 연속 나와 상대를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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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는 실책에서 나온다. KIA는 8경기를 치르면서 상대 실책을 8차례 이끌어냈다. 이중 총 6개의 실책이 빠른 발로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개막전이었던 29일 삼성전에서 박한이의 포구 실책과 지난 4일 두산전에서 이원석의 '알까기' 포구 실책을 제외하면 모두 이대형을 비롯한 KIA의 '실책 유발자들'이 만들어낸 실책이었다.
내야수는 누상에 발 빠른 주자가 있거나, 타자가 빠를 경우 긴장을 하게 된다. 의식을 안 하려 하지만, 막상 공을 잡고 난 뒤 다음 동작에서 이미 생갭다 멀리 와있는 상대를 보고 성급해진다. 악송구나 타구를 더듬는 등의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8개 중 무려 6개가 그렇게 나왔다. 이중 이대형이 영향을 미친 실책이 4개다. 절반은 이대형이 만들었다. 특히 지난 1일 NC전에서의 1대0 승리는 이대형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0-0으로 팽팽하던 8회말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에 상대 2루수 박민우가 송구 실책을 범했고, 이어진 1,3루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손민한이 투수 앞 땅볼을 더듬었다. 이때마다 이대형은 여유 있게 1루를 밟았고, 3루에서 홈까지 센스 있는 슬라이딩으로 결승득점을 만들어냈다.
5일 두산전 역시 3-2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7회 대거 5득점하며 승기를 잡았는데 무사 1루에서 상대 실책 2개가 연달아 나왔다. 주자는 이대형이었고, 타자는 김주찬. 두산 유격수 김재호는 김주찬의 땅볼 타구를 잡아 곧바로 2루로 토스하려다 포구 실책을 저질렀다. 이대형은 이미 2루에 거의 다 와있었고, 김재호는 몸보다 마음이 앞섰다.
다음 실책은 신종길의 희생번트 때 1루수 오재일의 송구 실책. 타자 신종길이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타구를 잡았는데 신종길의 발은 벌써 1루 근처에 있었다. 실책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무사 만루 찬스가 이어지면서 KIA가 대량득점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최근 야구에서 스피드의 가치는 높다. '발야구'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외국인타자 도입 등으로 프로야구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스피드는 중요하다.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 이대형을 앞세운 KIA의 실책 유발자들은 그래서 무섭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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