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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이정훈(36)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2년 간 옵션을 포함해 5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계약금이 2억원이고 옵션이 1억원, 연봉이 1억원이었다. FA는 오랜 시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 성격이다. 연봉 1억원.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큰 금액이지만, 16년 간 프로에서 뛴 베테랑 선수의 몸값치곤 적어 보였다. 수십억원대 계약이 수두룩한 현실에선 초라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이정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면서 마운드를 지켜왔다.
그런데 염경엽 히어로즈 감독은 이정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선발 투수처럼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마무리 투수 처럼 주목받는 것도 아니지만, 중간투수로 궂은 일을 군말없이 처리해온 그가 고맙다고 했다.
이정훈은 송신영과 함께 히어로즈 투수진의 최고 베테랑. 둘 모두 1977년 생인데, 생일이 빠른 송신영이 한 해 먼저 학교에 들어가 선배가 됐다. 올해도 이정훈의 자리는 불펜. 전천후로 경기에 나섰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앞서 있는 상황에서도, 박빙의 상황에서도 이정훈은 마운드에 올랐다. 필승조 역할도 했고, 끌려가는 상황에서 경기를 마무리하는 역할까지 했다.
베테랑으로서 예측이 어려운 등판에 불만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이정훈은 개인적인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야구는 개인 종목인 것 같지만 모든 게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단체 스포츠입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 역할을 하면서 좋은 영향을 줘야 이길 수 있어요. 저는 저한테 맡겨진 역할을 잘 해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정훈은 베테랑 답게 "크게 지고 있을 때는 점수를 조금 더 주고 내 평균자책점이 올라가더라도 아웃카운트를 빨리 늘려 경기를 마감하는 게 팀에 좋다"고 했다.
보통 투수들은 FA 계약 후 첫 시즌에 부진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난해 40경기에 등판해 4승4패1세이브8홀드, 평균자책점 4.67을 기록한 이정훈은 올해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투구이닝도 지난해 44⅓이닝을 넘어섰다. 전반기 막판에 오른쪽 팔꿈치가 조금 안 좋았지만, 4강 싸움으로 피말리는 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씩씩하게 던지고 있다.
정훈은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7년 간 497경기에 출전해 500경기에 3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히어로즈 소속 선수로는 송신영에 이어 두번째다.
"올해는 포스트시즌에 나가 씩씩하게 공을 던지고 싶어요. 히어로즈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이정훈의 현재 목표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