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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프로야구의 한 가지 재미를 꼽자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막내구단 NC의 활약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분명 NC는 성장하고 있다. 신인들과 기존 구단에서 데려온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어느새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딱 한 곳, 좀처럼 주인을 찾지 못한 자리가 있었다. NC의 숙제, 바로 마무리투수였다.
데뷔시즌이었던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에선 발목 수술 후유증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시즌엔 타고난 구위 덕에 불펜진 한 자리를 잡았다.
나이 답지 않은 씩씩함이 돋보였다. 시즌 초반 마무리였던 김진성이 부진하자, 김 감독은 이민호를 대체자로 점찍었다. 하지만 이민호 역시 흔들렸다. 박빙의 상황에서 무너질 때가 많았다. 팀 승리를 지켜낼 만큼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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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마무리체제인 듯 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아직 심성이 여린 선수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이민호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줬다. 김 감독을 비롯해 투수코치나 다른 코칭스태프 누구도 이민호에게 "네가 마무리투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NC의 마무리는 이민호다.
언론을 통해 NC 마무리 얘기를 많이 접했을 터, 하지만 이민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민호는 "별로 깊은 생각은 없다.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내가 못한 데 대해 스스로 화가 날 뿐이었다. 누구라도 믿음을 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의 믿음에 호투로 보답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었다.
이민호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압박을 느꼈던 걸까. 이민호는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던지고 싶은 대로 못 던졌다"고 털어놨다.
김경문 감독은 최근 복귀 후 연이은 호투를 펼치는 손민한의 투구에 대해 "어린 선수들이 배우는 게 많을 것"이라며 "본인의 스피드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원하는 곳에 공을 넣을 줄 아는 게 무서운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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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은 학창 시절부터 이민호의 우상이었다. 이민호는 부산고 대선배 손민한의 투구를 보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손민한이 NC에서 훈련을 시작한 뒤, 2군에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탓에 스스럼없이 다가가진 못한다. 하지만 손민한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후배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있었다.
이민호는 "요즘엔 자신감이 좀더 생긴 것 같다. 힘을 빼고 던지기 시작하니, 감이 왔다. 밸런스가 잡히면서 컨트롤 면에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웃었다. '힘 빼고 던지기'. 말은 쉬워보이지만, 실제 투수들에겐 좀처럼 감을 잡기 힘든 부분이다. 미세한 차이 속에서 최적의 감을 잡아야 한다.
이민호는 "이제 마운드에서 밸런스가 맞고, 안 맞고를 조금 알 것 같다. 힘을 빼고 던져도 쉽게 못 치더라. 왜 세게만 던지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했다.
감 잡은 이민호는 지난달 30일 두산전부터 3일 넥센전까지 팀이 3연승을 달리는 과정에서 3연속 세이브를 올렸다. 3일 경기에선 타구에 어깨를 맞고, 밸런스가 흐트러졌지만 변화구 대신 직구 승부를 펼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끝내 승리를 지켜냈다. 이젠 이민호가 승리를 지켜내며 포효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민호는 "선배가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하라며 던진 뒤 결과는 예측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 '공 하나하나 던지는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다"며 "덕분에 정말 많을 걸 배우고 있다. 손민한 선배의 장점을 모두 배우고 싶다"며 활짝 미소지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