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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에서 타격 컨디션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홈런도 치고…."
삼십대 후반의 백전 노장 멀티 내야수. 권용관의 눈은 마치 1군 무대를 처음 밟아본 신인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즐거움과 열정이 가득 묻어나는 내야수. 오른손 선발이라고 벤치를 지키게 할 이유는 없었다.
이날도 9번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틀 연속 벤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삼성 우완 에이스 윤성환에게 0-1로 끌려가던 6회. 무사 1루에 권용관은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로 찬스를 만들었다. 2사후 이병규의 동점 적시타가 터져 1-1. 3루까지 진출한 권용관. 잠시 후 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플레이로 큰 일을 냈다.
정성훈 타석에서 4구째 삼성 포수 이지영이 투수 윤성환에게 송구하는 틈에 냅다 홈으로 달렸다. 화들짝 놀란 윤성환이 포수에게 다시 송구했지만 권용관의 오른발 홈 터치가 살짝 빨랐다. 야수 선택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됐지만 사실상 홈스틸이나 다름 없는 멋진 허슬 플레이였다. 슬라이딩 과정에서 오른다리에 타박상을 입은 그는 6회말 수비부터 손주인과 교체됐다. 영광의 상처. 권용관은 홈런 타자가 아니다. 발이 빠른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권용관은 누구 못지 않게 게임에 집중했다. 용병 타자같은 대형 홈런도, 발로 얻어낸 천금같은 득점도 모두 정신력의 산물이었다. 권용관과 이병규 등 대 선배들의 불꽃 투혼에 젊은 후배들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LG는 정의윤의 추가 적시타로 3-1로 달아나며 열흘만에 복귀한 선발 주키치에게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선발승의 기회를 안겼다. 승패를 떠나 LG야구의 놀라운 변화의 잠재력과 나갈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던 희망의 하루였다.
대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