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류현진이 1일(한국시각) 한층 위력적인 직구와 커브를 앞세워 자신의 한 경기 최다인 12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songs@sportschosun.com
역시 직구가 살아야 한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처음으로 한 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시즌 3승 달성에 성공했다. 류현진은 1일(이하 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3안타 2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6대2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14일 애리조나전에서 삼진 9개를 곁들여 시즌 2승을 따낸 이후 3경기, 17일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평균자책점을 3.41에서 3.35로 낮춘 류현진은 탈삼진 46개를 기록, 뉴욕 메츠의 매트 하비와 함께 이 부문 내셔널리그 공동 4위로 올라섰다. 피츠버그의 A.J 버넷이 48탈삼진으로 이 부문 1위이고, 류현진의 팀동료 클레이튼 커쇼와 시카고 컵스의 제프 사마르지자가 47개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닥터K'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한국인 투수가 한 경기서 10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낸 것은 박찬호가 다저스 시절인 2001년 6월26일 샌프란시스코전서 10개를 기록한 것이 마지막이다.
최고 151㎞, 직구가 살아났다
류현진이 지난달 3일 샌프란시스코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잘 던진 뒤 국내 전문가들은 "체인지업과 커브, 슬라이더가 수준급이고 제구력도 좋았다"면서도 "직구의 공끝에 힘이 더 생기면 좀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류현진은 투구수 80개 가운데 직구를 50개 던졌다. 최고 구속은 92마일(148㎞)였고, 평균 80마일대 후반에 머물렀다. 스피드가 생갭다 떨어졌고, 전체적으로 공끝이 가볍다는 분석이었다. 직구 위주의 피칭을 하면서 적극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투구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했지만, 안타를 10개나 내주며 고전한 원인이 바로 직구의 위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날 류현진의 직구는 스피드와 공끝의 움직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고의 위력을 보였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2회 놀런 아레나도를 2루수 땅볼로 잡을 때 던진 직구가 이날 최고인 94마일(151㎞)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90~93마일(145~150㎞)을 꾸준히 유지했다. 23타자 중 12타자에게 직구를 승부구로 던졌고, 탈삼진 12개 가운데 7개가 직구를 던져 잡은 것이었다. 홈플레이트에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의 직구에 콜로라도 타자 3명이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4명의 타자는 완벽한 코너워크가 된 직구를 서서 지켜보며 돌아섰다.
직구+커브, '박찬호식' 볼배합
직구가 살아나니 변화구도 한층 효과적으로 던질 수 있었다. 삼진 12개 가운데 5개는 커브를 결정구로 던져 잡은 것인데, 직구에 힘이 있으니 타자들이 상대적으로 커브에 배팅타이밍을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다. 사실 커브는 류현진이 국내에서 잘 던지지 않았던 구종이다. 스프링캠프에서 커브의 대가로 통하는 샌디 쿠팩스로부터 조언을 들은 뒤 커브에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이날 던진 14개의 커브는 모두 카운트를 잡거나 결정구로 쓰였다. 커브로 헛스윙 삼진 3개, 루킹 삼진 2개를 기록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월리 벨 구심의 애매한 볼 판정으로 6회 한 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직구+커브'의 볼배합은 경기 내내 안정적이었다. 커브 구속은 70~75마일(113~121㎞)에서 형성됐고, 직구와의 스피드 차이는 20~24마일(32~39㎞)까지 나왔다. 콜로라도 타자들이 배팅타이밍을 잡는데 애를 먹을만도 했다. 이 부분이 바로 박찬호가 10여년전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당시의 볼배합을 연상시킨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인 2000~2001년, 두 시즌 연속 200개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한 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도 2년 동안 8번이나 연출했다. 당시 박찬호는 150㎞대 초중반의 강력한 직구와 커브를 주무기로 삼진 행진을 벌였다. 박찬호의 커브는 130㎞대 안팎의 빠른 커브, 이른바 슬러브로 불리는 것과 110㎞대의 느린 커브 두 가지가 있었다. 현재 류현진의 커브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빠른 직구와 결정구로 섞어던지는 두 가지 커브에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기 일쑤였다. 박찬호는 통산 11차례나 한 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기본적인 볼배합은 직구와 커브의 조합이었다.
A.J 엘리스, 전담포수 되나
이날 류현진과 배터리를 이룬 포수는 A.J 엘리스(32)였다. 2003년 신인드래프트 18라운드에서 다저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한 엘리스는 2008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30세가 넘은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마이너리그 생활을 겪으며 실력을 갖춰나갔다는 이야기인데, 투수의 마음을 잘 읽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이저리그 경험은 부족하지만, 류현진의 파트너로서는 더없이 좋은 포수라는 분석이다. 류현진이 지난달 3일 샌프란시스코전서 데뷔전을 치를 때 호흡을 맞춘 포수가 바로 엘리스다. 한 달여만에 다시 배터리를 이뤄 빈틈없는 리드로 류현진의 호투를 도왔다. 사실 지난달 20일부터 3경기에서 류현진의 공을 받은 라몬 에르난데스는 경험이 많지만, 류현진과의 의사소통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이날 엘리스와 사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거의 없었다. 빠른 인터벌에 빠른 투구 패턴으로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엘리스와의 완벽한 파트너십이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