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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던 짓을 하니까 참…."
타석에서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세 차례나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4회에는 병살타로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4번타자로 해결사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한 것이다. 이호준은 "나한테 찬스가 왔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았는지…"라며 "경기 막판엔 나한테 욕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호준은 전날 경기가 매진된 줄도 몰랐다. 롯데팬들의 견제구에 대항하는 응원구호 "마!" 소리도 안 들렸다고. 이호준은 "시범경기 땐 관중석 소리가 다 들렸다. '마!' 소리도 잘 들렸다. 그런데 어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어떻게 경기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호준은 식사 자리에서 장성호에게 "개막전 때 경기장을 나가다가 다리에 쥐가 나고, 담 증세까지 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것이다. 이호준은 "장성호도 프로 생활을 한 두 해 한 것도 아니고, 처음엔 '왜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어제 나도 똑같이 그랬다"며 혀를 내둘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천하의 이호준도 긴장한 개막전. 후배들은 오죽 했을까. 경기 후 이호준은 힘을 내며 "3연전에 두 경기나 남았다. 남은 2경기 이기면 위닝시리즈 아닌가. 한국시리즈 7차전도 아니고 한 번 졌다고 끝난 게 아니다. 실수 때문에 진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풀 죽은 후배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이호준은 집에 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이라이트를 보고, 그날 자신의 경기 내용을 복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04:00'을 가리켰다. 이호준은 "반성의 시간이었다. 난 평소에도 반성에 빠지면, 아침 6시가 금방이다. '오늘은 이렇게 해서 안 됐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한다. 그러다 답이 안 나오면 계속 잠을 못 자는 것"이라고 했다.
반성의 효과는 있었다. 이호준은 세번째 타석까지 침묵했지만, 기어이 마지막 타석에서 일을 냈다. 1-2로 뒤진 9회말 무사 2루서 우익수 오른쪽으로 향하는 2루타를 날렸다. 동점 적시타였다. 임무를 마친 이호준은 대주자 박헌욱으로 교체되며 경기를 마쳤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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