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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아키야마 소프트뱅크 감독, 하라 요미우리 감독 등이 사무라이 재팬 사령탑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설득과 거절 끝에 지휘봉은 야마모토 고지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는 '스몰볼' 야구의 신봉자다. 히로시마에서 두 차례 감독을 역임했지만 승률이나 대외적 인기는 떨어졌다. 제1회 대회 감독 오 사다하루와 2회 사령탑 하라 감독과 비교했을 때 이름값이 약했다.
사무라이 재팬의 출발은 불안했다. 1라운드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5대3으로 승리했다. 믿었던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스기우치 도시야(요미우리) 셋츠 다다시(소프트뱅크)가 차례로 1실점씩 했다. 끌려가다 타선의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경기를 간신히 뒤집었다. 다음 중국전에선 5대2로 승리했다. 2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후 가진 쿠바전에선 3대6으로 무너졌다. 쿠바 강타선에 10안타를 맞고 6실점했다.
이치로가 빠진 타선은 예상 대로 잘 터지지 않았다. 단 하나의 홈런도 나오지 않았다. 매경기 불안의 연속이었다. 철썩 같이 믿었던 제1선발 다나카는 미끄러운 WBC 공인구 적응에 애를 먹고 있었다. 버릇(쿠세)이 간파됐다는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일본은 10일 네덜란드전에서 그동안 잘 터지지 않았던 타선이 폭발했다. 홈런 6방을 앞세워 16대4, 7회 콜드게임승으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WBC 3회 연속 4강 달성을 이뤘다. 3연패에 성큼 다가섰다. 경기를 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일본 야구는 WBC에서 참가국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대회가 진행중이지만 일본은 이전 두 대회에 버금가는 성적을 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수두룩한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이탈리아 중 한 팀과 준결승전에서 맞붙게 된다. 일본의 준결승전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준결승전 선발로 마에다를 내세울 것이다. 그는 중국전 5이닝 1안타 무실점, 네덜란드전 5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호투를 이어갔다. 특히 일본 야구에서 검증된 발렌틴(야쿠르트)과 메이저리그 출신 강타자 앤드류 존스(라쿠텐) 등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마에다는 마치 지난 두 대회에서 마쓰자카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쓰자카는 두 대회 연속 MVP였다. 마에다를 지켜보기 위해 수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도쿄 돔에 모였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마에다는 2007시즌 구로다가 떠난 후 히로시마에서 급성장했다. 프로 2년째인 2008년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다. 최고 구속 150㎞대의 빠른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투심,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질을 던진다. 2010년 15승8패(평균자책점 2.21)로 일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받았다. 당시 최다승,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등 투수 8관왕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이번 WBC 직전 오른 어깨 통증으로 최종 엔트리 탈락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야마모토 감독은 마에다를 믿고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일본 야구는 세계 무대에서 계속 통하고 있다. 그 힘은 마운드에서 나온다. 야마모토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 투수 13명을 선발했다. 그중 사와무라상 수상자가 5명(다나카, 마에다, 스기우치, 와쿠이, 셋츠)이었다. 지난해 평균자책점이 1~2점대인 선수들이 12명이다. 와쿠이(평균자책점이 3.71)만 3점대였다. 소속팀에서 선발로 뛴 9명에 불펜 4명을 골랐다.
일본 마운드는 다르빗슈, 마쓰자카, 구로다, 이와쿠마, 후지카와 등이 빠졌지만 그에 맞먹는 대체 자원들이 국내에서 뛰고 있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 이전 WBC 유경험자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마운드가 약해진 한국은 첫판 네덜란드전에서 0대5로 일격을 당하고 무너졌다. 한국 야구는 손에 꼽을 수 있는 특출난 선수 몇 명으로 버텨왔다. 류현진이 있었다면 네덜란드전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위기가 있었지만 극복하고 일어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전이었다. 일본이 무너질 수 있었지만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마운드가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선발 노미 아츠시가 흔들리자 셋츠를 올렸다. 셋츠가 불안하자 다나카를 투입했다. 그 후에는 야마구치, 사와무라, 마키타에 이어 스기우치를 투입했다.
일본은 한국 보다 훨씬 두터운 선수층을 갖고 있다. 한국은 50여개의 고교에서 야구선수가 배출된다. 그 선수가 성장해 프로 9개팀에서 뛴다. 일본은 고교팀이 4000개가 넘는다. 한국의 80배가 넘는다. 그런데 일본 프로팀은 12개다.
1990년대 주니치에서 나고야의 태양으로 통했던 선동열 KIA 감독은 일본 1군 무대에서 던지는 투수들의 수준을 이렇게 말한다. "일본 1군 투수들의 제구력은 놀랍다. 포수가 10개를 요구하면 8개는 그 곳에 꽂아준다. 그런데 한국 1군 투수들은 8개를 정확하게 던져주는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문가들의 대부분이 일본 투수들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제구력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공끝의 힘도 일본 선수들이 낫다.
이런 한-일의 차이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은 지난 두 차례 WBC에서 4강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한국 야구는 세계 경쟁력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그 자리를 지켰고, 한국은 떨어졌다. 한국 야구의 경쟁력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