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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특급' 박찬호, 영욕의 19년 마감하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11-29 18:25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의 주인공, 박찬호가 19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한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결혼기념일인 11월 30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발표하게 됐다.

197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박찬호는 공주중동초 4학년 때 야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공주고를 졸업하고 한양대에 진학할 때만 해도 보통의 야구선수와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동기생인 조성민 임선동 등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학년 때인 1994년 1월 박찬호는 120만달러(약 13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LA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어 한국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국내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이 전부가 아니었다. 박찬호는 신인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역대 17번째 선수가 되면서 현지 언론을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했고, 2년을 기다려야 했다.

1995년 9월, 확대 엔트리 시행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다시 밟은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서 2회말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한 선발 라몬 마르티네스를 구원등판해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한국인 메이저리그 첫 승을 올렸다. 5일 뒤엔 플로리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첫 선발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박찬호의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맹위를 떨쳤다.

1997년 14승을 올리며 처음으로 10승 고지를 밟은 박찬호는 1998년 15승, 1999년 13승을 거뒀다. 2000년에는 자신의 한 시즌 최다승인 18승을 올리며 최전성기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15승을 올린 2001년엔 데뷔 후 처음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은퇴를 앞둔 '철인'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에게 생애 마지막 홈런을 맞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찬호는 2001년 말 텍사스와 5년간 6500만달러(715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하지만 '대박'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박찬호에게 텍사스 시절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암울한 시기였다. 허리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나 '메이저리그 역대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을 얻었다. 텍사스 첫 해 9승을 올린 뒤 2003년 1승, 2004년 4승에 머물렀다.


2005년 6월 5일 캔자스시티전에서 통산 100승을 올리는 등 허리부상을 이겨내는 듯 했지만, 7월엔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그해 12승8패를 거두며 부활하나 싶었지만, 2006년 뜻하지 않은 장출혈로 생사의 기로에 서는 등 고난을 겪고 7승을 올렸다.

2007년엔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었지만, 단 1경기 등판 후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이후 휴스턴으로 팀을 옮겼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8년엔 친정팀인 LA다저스로 돌아와 중간계투요원으로 4승4패 2세이브를 기록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후 필라델피아와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피츠버그에서 뛰던 2010년 10월 2일 플로리다전서 구원승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 기록을 새로 썼다.

박찬호는 지난해 일본 무대에 진출해 재기를 노렸지만, 오릭스에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29에 그쳤다. 이후 '박찬호 특별법' 통과로 한국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고,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박찬호가 남긴 마지막 기록은 23경기서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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