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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은 백지상태다."
한화는 베테랑 장성호(35)를 내놓은 대신 롯데 신인 투수 송창현(19)을 영입했다.
전격적이다. 보통 트레이드는 양자간 '물건값'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겉보기에는 장성호의 무게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송창현을 낙점한 김응용 한화 감독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한화가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볼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류현진(미국 진출), 양 훈(군 입대), 송신영(NC 특별지명) 등 마운드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으니 즉시 전력감의 투수가 절실했다.
여기에 군 복무를 마친 김태완 정현석 등의 가세로 인해 가중된 타석과 수비 포지션에서의 중복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한화 구단은 김 감독의 선택이 탁월한 것이라고 믿고 트레이드를 적극 추진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겉으로 드러난 포장이다.
김 감독으로서는 '선수 한 번 바꿨을 뿐인데…'이지만 구단과 선수단에 던져진 메시지는 더 크다.
그동안 서산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해 온 김 감독은 "백지상태"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으레 신임 감독이 부임하면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젊은 유망주 발굴을 위해 이런 단어를 꺼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어조는 강했다. "과거는 말 그대로 지난 일이야. 이전 시즌에 야구 좀 못하고 출전기회 못잡았다고 인생 끝난 거 아니야. 거꾸로 그동안 주전자리 보장받았다고 이름값 좀 있다고 안심했다가는 어림없지. 그래서 나는 항상 백지상태에서 뭘 그릴까 고민중이야."
김 감독이 방점을 둔 쪽은 이른바 주전급 잘나갔던 선수들이었다. 고참에 주전 자리를 꿰차왔던 선수라고 해서 별도의 예우를 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피력해왔다.
그동안의 전력이나 이름값은 김 감독이 부임하기도 전에 있었던 '과거'일 뿐이고, 앞으로의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선수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다는 무서운 리더십으로 무장했다.
그래야 김 감독의 말대로 "성적이 계속 나빴으니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된다"는 한화를 개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리더십을 여실하게 보여준 게 '장성호 트레이드'였다.
NC에 특별지명된 투수 송신영(35)도 비슷한 케이스다. 송신영은 지난해 한화가 야심차게 영입한 FA(자유계약선수)였다. 그만큼 한화는 적잖은 돈을 들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베테랑 송신영을 보호선수 20명 명단에서 과감하게 제외시키며 이름값 우선주의에 변화를 예고했다. 공교롭게도 장성호와 송신영 모두 서산 마무리캠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들이다.
한화의 한 선수는 "서산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대전에 남아있는 주전급 선수들이 많아서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고기를 먹어 본 선수' 위주로 가지 않겠느냐고 반신반의한 것도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이번에 트레이드를 보니 고기 좀 먹어봤다는 생각일랑 빨리 날려버리고 진짜 백지상태의 심정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화 선수들 대부분이 이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구단의 설명이다. 김 감독으로서는 전력 구성의 고민 하나 덜고 열마디 말로 해도 달성하기 힘든 선수단 정신교육 효과까지 누렸으니 일석이조다.
게다가 김 감독은 올시즌 FA 영입 실패로 인해 구단측과 한동안 불편한 관계였다. 그러나 이번에 구단이 김 감독의 선택에 전폭적인 지시를 보내고, 신속하게 처리를 함으로써 신뢰관계를 과시했다.
결국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 트레이드였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