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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사먹으면 뭐 하겠노. 설사하겠제…."
프로야구계 현역 최고령(71) 어르신이라는 연륜도 있지만 그동안 일궈놓은 업적과 경력때문이다.
웬만한 타팀 감독과 코치들도 함부로 말을 섞지 못할 지경인데 그를 처음 모시게 된 한화 선수들은 오죽할까.
서산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은 "부임한지 50일이 다 돼가지만 우리(한화) 선수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치의 감독이 아닌 인간 '김응용'으로 돌아가면 엄격하면서도 마음씨 넓은 할아버지이자 큰아버지다.
그런 김 감독이 2004년 현장을 떠난 뒤 8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낯익은 선수도 없는 한화에서 새출발을 하게 되자 나름대로 생존법을 선택했다.
철모르는 젊은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손자뻘 되는 '아기' 선수들과 얽인 훈훈한 인연을 소개했다.
먼저 폭소를 자아낸 것은 이른바 '소고기 사건'이다. 요즘 유명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고기 할아버지'와 비슷한 케이스다.
"어린 아기들이 대견스러워서 소고기 사묵겠제. 소고기 먹으면 뭐하겠노. 바로 설사하겠제"라는 개그 대사로 요약된다.
김 감독은 지난달 말 대전구장에서 회복훈련을 할 때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1, 2라운드로 지명된 투수 조지훈(18)과 김강래(18)를 따로 불러다가 저녁을 사줬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손자뻘 같은 어린 선수가 신인이라서 그런지 훈련을 열심히 하길래 몸보신을 해주고 싶었단다.
숙소 근처 한우고기 전문점에 데려가 "먹고 싶은대로 먹어보라"로 호기를 부렸단다. 하지만 이게 웬걸. 조지훈과 김강래는 천하의 김 감독이 "(고기)한 접시 더 할래"라고 권유하는데 신이 났는지 젓가락을 놓을 줄 몰랐다. 하기야 그 나이에 운동선수라면 소도 때려잡아 먹을 청춘이니 그럴 만했다.
결국 김 감독의 손에 남은 것은 60만원짜리 계산서였다. 김 감독은 "나는 나이도 있으니까 식사조절을 위해 몇 젓가락 들지도 않았는데 그 녀석들 참 많이 먹더라. 프로는 훈련 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1등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흡족했다"고 말했다.
소고기 회식을 하면서 도란도란 이런저런 대화도 나눴으니 김 감독의 외로움도 크게 해소됐다. 그러나 이튿날 두 풋내기는 과식을 해서 그런지 설사를 하고 말았다.
김 감독은 "조지훈과 김강래가 소고기를 먹고 힘낼 줄 알았는데 옆구리와 어깨가 아프다는 이유로 한동안 훈련에 빠졌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다른 선수들고 고기 사달라고 하면 어쩌지? 내 통장 잔액 확인해봐야 겠는데"라고 껄껄 웃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김 감독이 의사소통을 위해 공략하고 있는 또다른 선수는 투수 이태양(22)이다. 이태양은 김 감독의 레이더망에 제대로 걸린 케이스다. 다른 한화 선수들이 자신을 어렵게 대하는 것 같아서 이태양에게 슬쩍 말을 걸었더니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이태양이 덥썩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김 감독은 "이태양은 능청스럽게 나를 편하게 대해 주는 게 마음에 든다. 앞으로 친구로 삼아야 겠다"고 칭찬할 정도다. 김 감독은 이태양의 넉살만 좋은 게 아니다. 요즘 마무리 훈련 중에 연습경기를 통해서 관찰해 보니 될성 부른 나무의 떡잎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귀엽게 보이더란다.
어르신 김 감독은 새롭게 맡은 한화 구단에서 세대를 뛰어넘는 생존법을 익히고 있었다.
서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