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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기대하지 못했던 대박이다.
류현진의 미국 진출은 조건부로 승인한 소속팀 한화 구단 역시 그랬다.
한화 구단은 류현진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1000만달러(약 108억원)를 포스팅 금액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했다.
가이드라인보다도 2.5배 이상 뛰어넘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사실 세간에서는 한화 구단이 설정한 2가지 예상 가운데 전자가 대세였지 후자는 감히 입에 담기도 힘든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화 구단은 후자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단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전략을 제대로 짰기 때문이다. 류현진 포스팅에서2573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비결이기도 하다.
지난달 29일 류현진의 포스팅 허용을 발표하기 전까지 한화 구단은 내부적으로 커다란 산고를 겪었다.
신임 김응용 감독이 류현진의 잔류를 원하는 데다, 내년에 도약을 하고 싶은 구단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더라도 류현진이 필요했다. 이에 반해 류현진과 여론은 미국 진출에 대한 의지가 너무 강했다.
결국 류현진과 협의를 하면서 조건부로 포스팅을 허용하기로 했다. 대신 속전속결 원칙에 합의했다. 류현진이 한시라도 빨리 미국 진출을 원하고, 한화 구단도 포스팅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하루속히 류현진 논란을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와 함께 한화 구단은 이왕이면 류현진의 기를 살려주면서 시장 거래에서 우위를 확보하자는 포석을 품고 있었다.
관련 규정상 포스팅 시스템은 당해 연도 11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1일까지다. 이 기간 동안 원소속 구단이 원하는 날짜에 언제든지 실시하면 된다.
다르빗슈 등 대부분 포스팅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12월 이후 공식 포스팅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한화는 11월 1일자로 류현진을 포스팅에 올렸다. 신생팀 NC의 특별지명을 위해 보호선수 20명의 명단을 짜야 하는데 류현진을 미리 포함시키겠다는 특례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건의해 관철시키면서까지 서둘렀다.
한화 구단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의 윈터미팅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은 각 구단 단장과 에이전트가 만나 선수 트레이드와 FA(자유계약선수) 계약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스토브리그의 장터'라고 불린다.
공개적인 선수 시장은 아니지만 각 구단 고위층은 물밑에서 선수 사고 팔기 거래를 하기 때문에 어떤 쓸만한 물건이, 얼마에 나올 것인지 웬만한 시장조사가 가능한 자리다.
올해는 다음달 9일부터 12일까지(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화 구단은 윈터미팅이 열리기 전에 류현진에 대한 포스팅을 비롯해 입단 계약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추진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류현진이 입단하기 전에 윈터미팅이 겹친다면 류현진에 대한 시장 평가가 낮아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라는 게 한화의 설명이다.
류현진에 대한 포스팅을 시작한 11월 초라면 윈터미팅을 1개월 이상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다, 2012시즌을 끝낸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 트레이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다.
시장에 나온 '물건'이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류현진을 시장에 내놓으면 희소가치가 올라간다. 적어도 류현진을 영입하는데 관심을 가졌던 구단이라면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포스팅 금액을 상향조정 할 수밖에 없다. 포스팅 시스템이라는 게 비공개 입찰제도이니 더욱 그렇다. 한화 구단은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다.
막상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각자의 '물건'을 넌지시 제시하는 과정에서 류현진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라는 특성상 류현진급 선수가 곳곳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윈터미팅 이전에 류현진의 입단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같은 값이면 자국 리그 선수를 데려다 쓰거나, 비교할 '물건'이 있다는 이유로 류현진의 몸값을 낮추려고 하는 게 프로 세계의 당연한 생리다.
그래서 한화는 30일간의 독점 협상기간 등을 감안해 류현진과 미국 구단의 협상이 윈터미팅 이전에 완료될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너무 서두르면 체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한화와 류현진의 포스팅 전략에서는 예외였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