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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서건창(23)의 올시즌은 그의 말대로 '꿈' 같았다. 신고선수로 프로 입단, 하지만 프로에서 이름 한 번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방출. 상무나 경찰청마저 갈 수 없어 현역병으로 군입대. 흔히 볼 수 있는 무명 야구선수의 얘기다. 하지만 서건창은 이 모든 걸 겪고, 2012년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리고 생애 한 번 밖에 기회가 없다는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서건창의 신인왕 등극은 기록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수도 없이 실패를 겪은 '루저'의 성공스토리라 더욱 큰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서건창은 2008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대학을 갈 수 있었음에도 당당히 선택한 프로의 길, 하지만 시작부터 실패였다.
물론 대학에 갈 수도 있었다. 당시 고려대 사령탑이었던 양승호 감독은 부임 첫 해부터 광주일고 3학년 서건창을 유심히 지켜봤다. 타격재능도 있고, 수비도 또래 중에선 최고 수준이었다. 신인드래프트 전후로 러브콜을 보냈지만, 서건창의 마음은 프로에 있었다.
결국 서건창은 대학에 갈 기회를 걷어차고 테스트를 통해 LG에 입단했다. 정식선수로 등록돼 잠시 1군에도 올라봤지만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서건창의 프로 첫 타석의 결과는 삼진. 그 타석을 마지막으로 서건창은 LG 유니폼을 벗었다. 팔꿈치 수술 후 자리를 잃고 방출. 신고선수 출신으로 비좁은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 야구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마저도 실패였다. 프로에서 별다른 기록도 남기지 못한 방출생에겐 상무나 경찰청의 문턱 역시 너무나 높았다. 결국 서건창은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이 흔한 '실패담'이 '성공스토리'로 돌변한 출발점은 지난해 9월 넥센의 신고선수 테스트. 군생활 내내 방망이 한 번 못 잡아봤지만,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야구 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광주 31사단에서 배트 대신 소총을 들고 군복무를 하면서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다시 돌아갈 프로 무대를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만 한참 했다.
신생구단 NC가 생기면서 기회가 늘어날 것이란 생각은 했다. 일정상 빨랐던 넥센의 테스트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강진에서 테스트를 합격한 뒤 신고선수로 마무리훈련을 마치고, 12월엔 정식선수가 됐다. 그리고 내야수 김민성의 부상으로 잡은 기회를 놓지 않고 버텨냈다. 중고 신인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새얼굴'이나 다름없었다. 2012년, 그렇게 서건창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완성됐다.
서건창은 시즌 중반부터 신인왕 수상이 유력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개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언제나 진지하고 노력하는, 그만의 스타일이었다. 들뜬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을 품에 안은 뒤에도 "큰 기회를 주신 구단과 함께 고생한 동료 선후배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많이 부족한 제게 더 발전하라는 의미에서 주신 걸로 생각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뛰겠다"고 말했다. 틀에 박힌 멘트 같았지만, '정석'대로 사는 그와 어울리는 답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야 서건창은 "포스트시즌 경기를 다 봤는데 정규시즌과 다른 하나의 축제가 너무 부러웠다. 내년엔 우리 팀이 4강에 가서 함께 즐기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올 한해 힘든 시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어머니와 가족께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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