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신뢰하지 못했던 카드, 하지만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SK가 채병용 덕에 1년 만에 삼성에 복수혈전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이만수에게 확신 못 준 채병용, 여유 넘친 첫 등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2시즌, 뒤늦게 1군에 합류해 14경기서 3승(3패)을 거두는 데 그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4차전까지 덕아웃과 불펜만 지켰다. 엔트리에 든 26명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 감독도 아쉬운 마음이 컸다. "2년 반의 공백이 생갭다 큰 것 같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비밀병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롯데 타자들이 김광현을 상대로 기록한 6안타가 모두 우측으로 향하자, 채병용을 불렀다. 구속은 느리지만, 몸쪽 공에 강점이 있는 채병용이 해답이 될 것 같았다.
|
정작 채병용은 자신의 피칭에 대해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라며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어 "내가 믿음을 못 줬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감독님이 그렇게 보셨다면, 내 공이 좋지 않았던 것"이라며 그동안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과정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채병용 덕분에!' 멀쩡한 SK 선발진, 삼성처럼 '1+1'도 가능?
채병용의 호투가 가져온 효과는 크다. 단순히 5차전 승리,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 뿐만이 아니다. 채병용 덕분에 SK는 한국시리즈에서 마운드를 정상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사실 5차전에선 윤희상도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채병용이 쉽게 무너졌다면, 다음 카드는 윤희상이었다. 하지만 SK는 윤희상까지 가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만약 혈투 끝에 대구로 간다 해도 삼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
결국 던질 선발투수가 없던 SK는 1차전서 '땜방 선발' 고효준을 내세워야 했고, 붕괴된 선발진으로 시리즈 내내 무기력한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막강한 마운드를 자랑하는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컨디션 좋은 선발투수를 두번째 투수로 활용하는 '1+1' 전략으로 SK를 짓밟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윤희상을 아끼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안정적인 선발진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윤희상 송은범 마리오 김광현의 순서를 재정비해 4차전까지 차곡차곡 배치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마리오는 순서대로라면 3차전 투입이 가능하지만, 2차전으로 앞당겨 삼성을 강하게 압박하는 카드로 쓸 수도 있다.
여기에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된 부시도 한국시리즈에 뛴다. 부시와 채병용을 두번째 투수로 준비해 삼성처럼 '선발급 불펜투수'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만수 감독은 5차전 승리 후 "지금 같은 기분으로 한다면, 한국시리즈에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채병용의 호투가 불러온 효과는 크다. SK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넘어 '대형사고'를 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