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거인, 13년을 기다린 PS 위닝시리즈

홍민기 기자

기사입력 2012-10-15 10:50 | 최종수정 2012-10-15 15:22


12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2012 준플레이오프 4차전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연장 10회말 1사 2루서 두산 프록터의 폭투와 악송구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플레이오프행을 결정지은 롯데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부산=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10.12.

시간이 흘러 어느 덧 13년이 지났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뀐지도 벌써 12년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10월 12일 홈구장인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두산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구어내면서, 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이후 13년 만에,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위닝시리즈를 이루었다. 13년을 기다린 포스트 시즌 위닝시리즈 과정 자체도 극적이었다. 자이언츠의 극적인 드라마가 이루어진 과정 속의 키워드를 살펴본다.

1. 뒷심

준플레이오프 1,2차전 원정경기에서 기분 좋은 역전승을 따내고 홈인 사직구장으로 넘어온 자이언츠는 2010년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2년 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초반 2연승을 거두고도 홈인 사직구장에서 내리 2경기를 내주고, 결국 잠실구장 5차전만저 베어스에게 내주면서 리버스 스윕을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준플레이오프 3차전은 2년 전 준플레이오프 3차전과 마치 평행이론을 달리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경기 초반 조성환의 어이없는 주루플레이로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상황이 판박이처럼 발생하였다. 반면에 베어스 타선은 특유의 기동력과 집중력이 되살아나면서 반전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4차전에서도 베어스는 선발투수 김선우의 호투를 앞세워 자이언츠를 공략하였다. 특히 포스트 시즌에 처음 출전한 4번 타자 윤석민이 생애 첫 포스트시즌 홈런을 포함, 2타점을 올려주면서 베어스의 기세는 리버스 스윕 모드로 접어드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경기 후반 8회초에 베어스 이원석의 외야 깊은 타구를 자이언츠 중견수 전준우가 포구 미스를 범하면서 베어스가 1점을 더 뽑는 순간, 경기는 사실상 끝이 난거나 다름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베어스가 8회부터 선발요원인 니퍼트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쓰자, 자이언츠 타선도 몽니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선두타자 문규현이 9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안타로 출루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후속타자 김주찬이 좌중간 2루타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2번 타자 박준서의 좌전안타 때 2루주자 김주찬이 베어스 좌익수 김현수의 호송구에 홈에서 횡사 당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베어스로 넘어가는 듯 싶었다.

자이언츠의 분위기가 가라앉을려는 순간, 후속타자 손아섭이 니퍼트의 초구를 공략하며 안타로 출루한 것이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려 놓는 결정적인 반전이 되었다. 결국 니퍼트는 본인의 힘으로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고, 베어스 김진욱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믿을만한 불펜요원인 홍상삼을 마운드에 올린다.

하지만 니퍼트가 최소 1이닝은 책임져 줄거란 생각했던 상황에서 예상보다 마운드에 빨리 오른 홍상삼은 제구력에 급격한 난조를 보이면서 홍성흔과 대타 황성용에게 연달아 볼넷을 내주면서 실점을 하고, 전준우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 결국 동점을 내주게 된다.


기세가 오른 자이언츠는 10회말 1차전의 영웅이었던 선두타자 박준서가 안타로 출루하면서 기회를 만들고, 희생번트로 2루까지 진루한다. 4번타자 홍성흔 타석에서 베어스 투수 프록터의 폭투가 나오고 베어스 포수 양의지는 잠시 공의 방향을 놓치고 헤매다가 공을 잡고 재빨리 3루로 공을 뿌렸지만 경기를 끝내는 악송구가 되고 말았다.

8회말까지 3-0으로 뒤지고 있던 자이언츠는 막판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면서 마침내 지긋지긋했던 포스트시즌 징크스를 털어냈다. 승리한 3경기 모두 역전승으로 일구어내는 뒷심을 보이면서 자이언츠는 이전 포스트시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끈기로 상징되는 베어스의 팀 컬러를 능가하는 뒷심이 자이언츠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2. 한 수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벤치의 지략대결에서 백중세를 예상했었다. 베어스의 김진욱 감독은 초보 감독이고, 자이언츠 양승호 감독도 감독 2년차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두 감독 모두 시즌 내내 별다른 작전 없이 선수들에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 과연 포스트 시즌에서 양팀 감독들의 지략대결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만큼은 양승호 감독의 완승이었다. 1차전 7회말 구원투수 최대성의 투입, 8회초 박준서의 대타기용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4차전에서도 선발요원 송승준을 구원 투입해 초반 달아오르던 베어스의 기세를 누그러뜨렸고, 8회말 대타 황성용을 투입해 귀중한 밀어내기 득점을 이끌어냈다. 물론 아쉬운 장면들도 있었지만, 양승호 감독은 지난 해 플레이오프 때보다 훨씬 적극적인 작전구사를 통해 마침내 팀의 21세기 첫 포스트시즌 위닝시리즈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반면에 김동주, 고영민 등 고참멤버들을 제외시키고 신진멤버들로 엔트리를 구성한 베어스의 김진욱 감독은 초보감독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계투진 운용에서 지나치게 홍상삼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아무리 포스트 시즌이었지만 매경기 출장하며 1이닝 이상씩을 던진 홍상삼의 피로도는 정규시즌 때보다 몇 배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시즌 내내 붙박이 마무리로 기용했던 프록터를 지나치게 아낀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4차전에서 3-0으로 리드하고 있던 상황에서 선발요원 니퍼트를 투입한 것은 '최악의 무리수'가 되었고,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베어스는 예전에 비해 선발진의 무게감은 확실하게 좋아졌으나, 반면에 불펜진의 무게감이 줄어들면서 뒷심대결에서 자이언츠에 밀리고 말았다. 부상 및 컨디션 난조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정재훈, 임태훈, 이재우 등의 공백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3. 3루

홈베이스에 들어오기 직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3루 베이스에서는 그 어떤 베이스보다도 더욱 신중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이언츠는 3차전에서 3루 베이스에서 경거망동을 일삼다가 분위기를 그르치고 말았다. 1회말 3루주자 조성환은 박종윤의 우익수 직선타구 때 3루 베이스를 밟고 리터치 준비를 미리 하지 않다가 홈에서 여유있게 횡사당하고 말았다. 이번 시리즈 내내 '멘붕(멘탈붕괴) 종합 선물세트'를 선보인 조성환의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는 경기 초반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또한 3차전 4회말에서도 3루 주자 전준우는 리드를 쓸데 없이 넓게 잡았다가 결국 견제사를 당하고 말았다. 가장 득점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3루 베이스에서 주자들은 더욱 기민하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3루에서의 횡사는 팀 사기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면에 4차전에서 10회말 자이언츠 2루주자 박준서는 베어스 포수 양의지가 볼의 방향을 잃는 틈을 타서 과감하게 3루로 쇄도하였고, 결국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발판이 되었다.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 3루로 진루를 시도한 박준서의 과감함이 팀에 소중한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4. 불펜

이번 시리즈에서 니퍼트, 노경은, 이용찬, 김선우로 이루어진 베어스의 선발진은 확실한 경쟁우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에 뒷심대결에서 밀리면서 결국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올 시즌 이전만 하더라도 베어스의 경쟁력은 두터운 불펜이었다. 하지만 핵심요원인 정재훈, 고창성, 이혜천 등이 각각 부상 및 컨디션 난조로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그나마 홍상삼의 발견은 베어스 불펜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홍상삼에게 과부하가 걸리면서 결국 베어스는 좌초하고 말았다.

반면에 올 시즌을 앞두고 SK와이번스의 핵심 불펜요원이었던 정대현과 이승호와 FA 계약을 맺은 자이언츠는 정규시즌에서는 두 선수의 공헌도가 다소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두 선수를 영입한 보람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여왕 갈매기' 정대현은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2세이브를 거두면서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3차전을 제외한 매 경기가 경기 후반까지 접전이 펼쳐졌고, 정대현은 안정감있는 경기운영으로 팀 타선이 뒷심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시즌 내내 컨디션 난조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승호도 3차전 선발 사도스키가 갑작스레 무너진 상황에 구원등판, 3.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관록을 과시하였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제 맛을 안다고 하듯이 이승호는 풍부한 큰 경기경험을 중요한 순간에 유감없이 활용하며 향후 포스트 시즌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였다.

불펜진의 경쟁력이 이번 시리즈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3년 만에 포스트시즌 위닝시리즈를 일구어낸 자이언츠는 이제 플레이오프에서 지난 해에 이어 SK 와이번스와 숙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SK 와이번스는 9개 구단 중 가장 가을에 강한 DNA를 보유한 팀이다. 과연 자이언츠가 20년전 1992년의 기적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P.S. 이번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펼쳐진 사직구장에 입장한 관중수는 20,795명이었다. 2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직구장에 정규시즌도 아닌 포스트시즌에서 빈 좌석이 드러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전날 3차전에서 졸전을 거듭한 자이언츠 선수들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가장 야구열기가 뜨거운 사직구장이 매진에 실패했다는 것은 야구 흥행에 적신호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포스트 시즌의 긴장감의 영향도 있겠지만, 실책이 너무 자주 속출하면서 올 시즌 내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던 경기력 저하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또한 인터넷 예매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이다. 항간에는 각 구단에서 미리 표를 확보해서 접대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문의 기사도 나온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팬들의 위한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구단들의 '무뇌아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팬들을 우습게 보는 처사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직적인 암표상들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으며, 포털 사이트 중고상품 판매 카페에서 버젓이 암표를 내다팔고 있다. KBO에서는 포스트 시즌 티켓 관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서 보다 많은 야구팬들이 가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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