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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자니 못 믿겠고, 안 쓰자니 내일이 두렵고'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한승혁의 기용은 역전패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한승혁은 이닝이 시작하자마자 두 타자를 각각 삼진과 1루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가능성을 보이더니 이후 갑자기 무너졌다. 3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1실점한 뒤 2사 만루에서 강판됐다. 이어 등판한 좌완 진해수가 SK 대타 이재원에게 만루포를 얻어맞아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진해수 역시 KIA의 좌완 기대주 중 하나다. KIA의 기대주들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결국 선 감독의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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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감독들은 늘 두 가지 주요 과제를 떠안고 있다. 하나는 그해의 성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위한 투자 즉 선수 육성이다. 두 과제의 가치는 동등하다. 절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딜레마는 곧 여기에서 출발한다.
해당 시즌의 성적을 위한다면 경험 많고, 실력이 검증된 선수를 써야 하는게 맞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 혹은 유망주들은 일종의 복권과 같아서 제대로 터지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다. 이렇게 불규칙적인 변수가 많은 선수들은 팀의 기본전력 계산에서 빼야 한다. 6개월여에 이르는 긴 시즌 동안 133경기를 힘있게 이끌어가려는 사령탑이라면 팀의 기본전력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변수들은 일단 제외해놓고 본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하지만, 신인과 유망주의 발굴과 육성 또한 엄연히 감독의 과제다. 늘 기존의 선수들만으로 팀을 운영하다보면 '노쇠화'와 '정체화'라는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나 유망주들을 또 써야 한다. 비록 그런 선수들을 기용해서 팀이 패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여겨야 한다. 이래저래 늘 감독들은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선 감독의 15일 투수 운용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2점차의 타이트한 리드 상황에 유망주 투수들을 기용해 어떤 식으로 이기는 흐름의 경기를 끝내는 지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비록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는 한승혁이나 진해수 본인들에게는 어떤 경험보다 값질 수 있다.
문제는 한승혁이나 진해수 본인들이 이날의 실패로 인해 트라우마나 좌절감을 갖게되는 경우다. 패배의 경험이 성장을 위한 값진 밑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의 단초가 되는 경우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코칭스태프의 가르침이다. 선 감독이나 이강철 투수코치의 역할이 바로 이런 면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