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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bunt).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배트에 공을 약하게 맞혀 내야에 떨어트리는 타법을 말한다.
팬들은 희생번트가 나와야 할 분명한 상황에서 타석에 있는 타자가 번트를 실패할 경우 비난을 퍼붓는다. '왜 그것 하나 제대로 못 대느냐'는 식이다. 얼핏 보면 상대 투수의 빠른 공, 혹은 변화무쌍한 공을 쳐내는 것보다 배트를 갖다대는 게 더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번트는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되는 '기술'이다.
지난 8일부터 홈에서 KIA와 3연전을 가진 LG를 보자. 첫 경기였던 8일에는 김태군과 김용의가 번트 타구가 뜬공으로 잡히면서 찬스를 허무하게 날렸다. 9일엔 베테랑 박용택마저 번트를 실패해 병살플레이로 이어졌다. 동점 상황에서 1점을 짜내기 위해 번트 작전이 나왔지만, 모두 실패하면서 이틀 연속 연장 승부를 해야만 했다.
올시즌 LG는 그동안 부족했던 한 베이스 더 가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팀 배팅 코치'라는 새로운 보직을 만들었다. 직함에 어울릴 만한 코치가 필요했다. 김기태 감독은 현역 시절 1014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가진 '철인' 최태원 코치를 데려왔다. 최 코치는 매일 배팅케이지 뒷편에서 번트 및 기타 타격훈련을 지도한다.
최 코치는 세 차례의 번트 실패 모두 높은 공에 어설프게 번트를 대려다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싶어 방망이를 뺄 수 있는 시간은 선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직구와 변화구를 막론하고, 찰나의 순간에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명해 댈 지 말 지를 판단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최 코치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던 공이 높았을 때, 배트를 뒤로 빼다가 맞은 것이다"며 "번트는 뒤에서 맞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무조건 처음 생각했던대로 앞에서 맞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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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코치는 최근 선수들이 번트를 어려워 하는 데 대해 "훈련 땐 누구나 번트를 잘 댄다. 그러나 경기만 들어가면 꼭 실패가 나온다"며 "훈련 때 주자가 나가 있는 상황 등을 상상하지 않고 그저 배트를 갖다 대서 그렇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훈련한 선수는 실전에서도 실수가 없다"고 말했다.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훈련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최 코치는 며칠 동안 LG를 휘감은 번트 실패에 대해 묻자 "본인이 실패했을 때만 트라우마가 오는 게 아니다. 번트 실패가 몇 차례 나오다 보면, '나도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부담감에 휩싸인다"며 "그래서 선수들에게 일부러 많은 얘길 하지 않는다. 알아서 극복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라고 답했다. 부담을 줘서 좋을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렇다면 번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 코치는 가장 먼저 "스피드를 줄여라"라고 했다. 어떤 공이 오든 홈플레이트에서 1m 앞에 떨어뜨려야 주자가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구종과 던지는 투수에 따라 정말 다양한 공이 있지만, 원래 공이 가진 스피드를 자신의 스피드로 바꾸는 것이 번트 성공의 첫번째 조건이었다.
코스는 그 이후다. 흔히 방망이를 컨트롤해 공이 들어오는 코스에 대처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 코치는 "배트 컨트롤이 아니다. 하체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공의 궤적에 배트가 따라가서는 절대 제대로 된 번트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최 코치는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하체를 이용해 좌우, 상하 코스에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몸은 그대로 있게 배트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하체가 먼저 움직여 공을 차분히 받는 모양새였다.
번트야 말로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최 코치를 붙잡고 한참 조언을 구했다. 사회인야구에서도 어설프게 번트를 대려다 부상을 입는 일이 많다. 정상적인 타격에 비해 숙지해야 할 중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최 코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했다. "훈련은 시합처럼, 시합은 훈련처럼 하라는 말이 있지 않나. 번트 역시 그런 생각으로 해야 실수 없이 잘 댈 수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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