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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게 해주고 싶은데 본인을 배려하자면, 쉬게 할 수 없다?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유원상, 이미 통증은 있었다?
유원상은 올시즌 LG의 '히트 상품'이다. 2006년 프로 데뷔 후 뒤늦게 꽃을 피웠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바꾸면서 마치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다.
기록만 봐도 좋다. 올시즌 49경기서 62⅓이닝을 던져 4승2패 3세이브 17홀드에 평균자책점 2.24를 기록했다.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140㎞대 중후반의 묵직한 직구에 140㎞를 상회하는 고속슬라이더로 완벽한 셋업맨으로 자리잡았다.
팔꿈치 수술 후 재활 과정에 있던 봉중근이 연투가 불가능해 뒷문을 책임지는 일도 있었다. 전반기 LG에서 가장 믿음직스런 투수는 유원상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투구의 후유증으로 팔꿈치에 통증이 왔다. 풀타임 중간계투 첫 해에 잦은 등판을 한 탓에 시즌 중반부터 유원상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던 게 사실이다.
유원상은 한창 잘 던지던 지난 6월, 경기 도중 이상한 조짐을 보였다. 6월12일 잠실 SK전에서 갑자기 직구를 던지지 못하고, 변화구로만 승부한 것이다. 그간 자신 있었던 직구가 사라지자 변화구의 위력도 사라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4실점하는 최악투를 보였다.
사실 이때부터 팔꿈치에 이상이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본인 스스로 통증에 대한 완벽하게 확신이 서지 않았거나, 트레이닝 파트에 제대로 통증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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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상은 이번 시즌에 대한 욕심이 컸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도중 차명석 코치의 권유로 보직 전환을 받아들였다. 오랜 시간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유원상의 다소 산만한 성격을 파악한 차 코치의 선견지명이었다.
처음엔 비록 빛이 나는 보직이 아니었지만, 셋업맨으로서 승승장구하면서 중간계투라는 새로운 옷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목표를 잡았다. 88경기 출전에 1점대 방어율, 그리고 25홀드였다.
유원상이 88경기 출전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바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 기준 때문이다. 시즌 중 유원상은 '너무 많이 등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혀 문제가 없다. 매일매일 또 나가고 싶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FA 자격 기준이 되는 88이닝을 채우고 싶다"고 말해왔다.
사실 유원상은 1군 등록일수로도 FA 기준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88이닝은 그에게 상징적인 의미였다. 보직 전환 첫 해,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투수의 경우 FA 자격을 채우는 데 필요한 '1시즌'은 규정이닝의 ⅔이상을 소화하거나 1군 등록일수가 145일(2005년까지는 150일) 이상이어야 한다. 88이닝은 규정이닝의 ⅔에 해당하는 수치. '붙박이' 1군 멤버였던 유원상의 경우 145일 이상 등록은 무난해 보였다.
그런데 팔꿈치 통증이 발목을 잡았다. 88이닝은 커녕, 1군 등록일수 145일도 채우기 힘들어졌다. 개막전부터 1군에만 머물던 유원상은 지난 13일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1군에 머문 날은 총 128일. 145일까지는 17일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서 LG 코칭스태프의 딜레마가 생긴 것이다. 유원상 개인을 생각한다면, 이 자격 기준을 채워줘야 한다. 본인도 원하고 있다. 올시즌 팀에 공헌한 그에 대한 당연한 배려다. 하지만 선수 개인의 몸상태는 물론, 내년 시즌을 생각한다면 무리시켜서는 안된다.
사실 유원상 같은 케이스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삼성의 '끝판대장' 오승환도 부상을 입은 지난 2009시즌 막판, 단 하루 1군 엔트리에 등록돼 FA 1시즌 기준을 통과했다. 당시 1군 등록일수가 하루 모자르던 오승환을 위한 선동열 전 감독의 배려였다. 재활중이던 오승환의 등판은 당연히 불가능했지만, 선 감독은 기꺼이 엔트리 한 자리를 내줬다.
지금 상황에서 유원상은 9월 중에 1군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LG 코칭스태프는 100%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무리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1군에서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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