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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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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부터 홈런을 쳐 줘야할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KIA의 올해 홈런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시즌 92경기를 치른 15일 현재 33개의 홈런으로 8개 구단 중 최하위다. 1위 SK(80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숫자다. 이로 인해 장타율도 3할5푼1리로 역시 최하위다.
그런데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공격력이 약화된 것 치고는 올해 KIA의 팀 득점력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꽤 흥미로운 결과다. 올해 KIA는 92경기에서 391득점을 올렸다. 역시 최하위다. 하지만 홈런 대비 득점비율은 상위권에 속한다.
홈런 1개는 최소 1득점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자가 쌓일 경우 최대 4득점까지도 낼 수 있지만, 최소치로 보면 '홈런 1개=득점 1개'의 등호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홈런 최하위 KIA를 기준으로 할 때 이보다 홈런을 많이 친 팀은 그 갯수 이상만큼 득점력의 우위를 보여야 한다. 만약 홈런 갯수의 차이보다 득점 차이가 적다면 홈런 이외의 공격옵션에서 득점효율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팀이 바로 올해 홈런 1위 SK다. SK는 KIA보다 무려 47개나 많은 홈런을 날렸다. 즉, 최소 47득점을 KIA보다 많이 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SK의 총득점은 406점 밖에 안된다. KIA보다 겨우 15점 많을 뿐이다. 그렇다면 KIA가 홈런 이외의 공격에서 SK보다 32점을 더 냈다는 뜻이 된다. 롯데(49홈런, 397득점)역시 KIA에 비해 홈런을 16개 많이 쳤지만, 득점은 겨우 6점 많이 냈다.
홈런 부족을 채운 발야구의 힘
이런 자료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KIA가 꼭 홈런이 아니더라도 다른 공격에서 최대한 점수를 짜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홈런이 적더라도 득점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득점권에 있는 주자를 자주 불러들이면 된다. 이는 득점권 타율과 관계있다. 득점 상황에서 반드시 홈런이 아니더라도 정확한 타격만 할 수 있다면 점수를 충분히 낼 수 있다.
올해 KIA의 득점권 타율은 2할7푼4리로 8개 구단 중 4위다. 상위권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그렇게 특출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런의 공백을 메울만큼 득점을 뽑아냈다는 것은 KIA가 그만큼 기동력있는 야구와 팀 플레이를 앞세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KIA는 10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는데, 지난해보다 21개나 늘어난 수치다. 또 희생타(플라이+번트)도 97(80+17)개에서 129(100+29)개로 32개나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선 감독이 시즌 초반부터 선언한 '잇몸으로 하는 야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증명한다. 선 감독은 올 시즌 주전거포들이 정상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수의 개인기보다 팀 전체의 기동력 및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공격의 방향을 설정했다. 그래서 박기남이나 이준호 윤완주 신종길 등 무명의 선수들이 적극 기용됐고, 또 나름의 성과를 냈다. 결과적으로 시즌 초 그가 말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것은 화려함보다는 조직력의 야구를 예고하는 말이었다. 더불어 KIA의 체질을 '선동열 식'으로 바꿔놓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