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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가라앉지만(싱킹), 투수는 날아오른다. '싱킹 패스트볼(싱커)'이 KIA의 후반기 상승세의 열쇠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발진의 호투 속에서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올 시즌 처음으로 한국무대를 밟은 소사와 복귀 후 첫 풀타임 선발시즌을 치르고 있는 김진우가 모두 싱커로 단단히 재미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은 서로 조금 다르지만, 이들은 '연착륙'이라는 공동의 화두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다. 시즌 중반 갑작스럽게 합류한 소사는 낯선 리그와 문화에 빨리 적응해야 했고, 김진우 역시 긴 방황을 마치고 풀타임 선발로 돌아온 첫 해라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야 했다. 그 고민을 해결해준 열쇠가 바로 '싱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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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계열(커브, 슬라이더)'이나 '체인지업 계열'의 구종에 비해 패스트볼 계열인 싱커는 스피드가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타자의 입장에서는 포심 패스트볼만큼의 빠르기로 날아오다 마지막 순간, 갑작스러운 무브먼트의 변화를 보이며 밑으로 가라앉는 싱커는 거의 '마구'나 마찬가지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제구가 잘 되고 낙폭이 클 때 이야기다.
그런데 소사나 김진우는 최근 싱커의 스피드와 제구력, 그리고 무브먼트가 모두 통하고 있다. 소사의 싱커 스피드는 무려 156㎞까지 나왔다. 그냥 포심 패스트볼이라도 이 정도 구속이라면 공략하기 까다로운데, 거기에 막판에 밑으로 가라앉는 변화까지 보이니 타자는 알고도 속는다.
한동안 2군에서 컨디션을 조율하다가 후반기 들어 다시 1군에 돌아온 김진우 역시 최고 149㎞의 싱커를 주무기로 쓰고 있다. 모든 타자들이 김진우의 주요 레퍼토리를 '포심 패스트볼&커브'라고 생각하는 동안 김진우는 한가지 비밀무기를 더 마련해 온 것이다. 8일 광주 넥센전에 선발 등판한 김진우가 8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개인 최다이닝 기록을 세우는 동시에 6승째를 거둘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싱커에 있었다. 김진우는 이날 총 투구수(119개)의 57%(68개)를 싱커로 던졌다.
왜 하필 싱커인가
이 시점에서 드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소사와 김진우는 다른 많은 구종 중에 왜 하필 싱커를 주무기로 선택했을까. 특히 김진우는 '최동원 이후 최고'라고 불리는 명품 폭포수 커브를 기존에 주무기로 갖고 있었다.
이는 두 투수들의 투구 스타일과 연관이 있다. 소사와 김진우는 150㎞를 넘나드는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갖고 있는 우완 정통파 투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사는 올해 최고 154㎞까지 나왔고, 김진우 역시 공백기로 인해 전성기보다는 조금 떨어졌지만 지난 9일 광주 한화전에서는 최고 151㎞를 던진 적이 있다.
사실상 '제구가 된다'는 전제조건만 성립된다면 포심 패스트볼만큼 위력적인 구종은 없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KIA 선동열 감독도 "정확히 제구가 되는 직구 하나만으로도 10승은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소사와 김진우는 기본적으로 가장 위력적인 공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의 제구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제2구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2구종'은 기본적인 투구스타일을 고려해 장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던지는 투수에게도 무리가 없고, 또 이미 갖고 있는 빠른 공과도 상성이 맞는다. 그래서 같은 정통파 투수라도 투구시 팔의 각도와 공을 놓는 타점의 높낮이에 의해 조금 더 몸에 맞는 구종이 있다. 팔의 각도가 높은 쪽은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등이 잘 맞고, 약간 옆으로 퍼져나오는 투수는 횡변화를 갖고 있는 슬라이더가 더 어울리는 식이다.
그런데 싱커의 경우에는 이러한 고민에서 일단 자유롭다. 투구법 자체가 패스트볼과 같은 스타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팔꿈치나 어깨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릴리스 순간 손목이나 손가락을 개개인별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소사나 김진우처럼 빠른 포심패스트볼을 갖고 있는 투수에게는 그 어떤 변화구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김진우과 소사가 후반기에 선전하게 된 비결은 싱커의 위력과 활용도가 늘어난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