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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대 시절요? 야구 관두면 뭐할까, 그 고민했었죠."
LG 내야엔 정말 '그림 안 나오는' 야수가 있다. 1m87의 큰 키와 긴다리에 고작 74㎏밖에 안 되는 호리호리한 몸. 농구 코트에서나 볼 법한 '꺽다리' 선수 한 명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하지만 공을 낚아내는 모습이나 송구 시엔 제법 그림이 나온다. 외형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게다가 급할 땐 외야수 글러브까지 낀다.
김용의는 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예비역 병장'이다. 현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쳤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쳇말로 '빡세다'고 하는 의장대에서 기수로 복무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현역으로 군대를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자, 잔인하게 말하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상무나 경찰청에서 2년여의 시간 동안 실전에서 뛰는 것과 달리, 군대에서는 실밥 박힌 흰색 공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용의는 왜 현역으로, 그것도 의장대 기수로 군대에 가게 됐을까. 숨겨진 스토리가 재밌다. 2008년 2차 4라운드 전체 29순위로 두산에 지명된 김용의는 고려대 재학 시절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던 중장거리포였다. 학창 시절부터 내야수로서 기본기가 좋았고, 드물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한다는 평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주전 3루수로 4년을 보냈고, 국가대표까지 뽑혔다.
그러던 중 이재영과 함께 2대2 트레이드(이성열 최승환)돼 두산에서 LG로 이적했다. 데뷔 첫 시즌을 시작한지 두 달 만에 겪은 트레이드, 김용의는 2008년 18경기서 타율 1할5푼4리 1타점을 기록한 뒤 조용히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2군을 전전하던 2009년, 경찰청에 입대해 야구를 계속하려 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는 낙방. 김용의는 현역 입대를 결정했다. 2009년 12월, 그는 그렇게 102보충대로 향했다. 김용의는 "그때는 정말 어린 마음에 남자는 한방이라 생각했다. 빨리 갔다와서 야구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깃발을 들게 된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김용의는 훈련소에서 "전방에 안 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받았다. 원주에 위치한 1군 사령부 의장대 기수를 제안받은 것이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김용의는 수많은 훈련병 중에서 단연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장대라 하면 '빡센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김용의에게 도대체 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들렸다. "그래도 원주면, 전방은 아니잖아요. 전방 가면 진짜 야구 못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생각은 며칠 안 가 완벽하게 뒤집혔다. 김용의는 군생활을 설명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는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행사에, 훈련에…. 내 시간이 없었다"며 "캐치볼을 받아 줄 이도 없었고, 방망이 잡을 일은 더욱 없었다"며 웃었다.
전역 후 돌아갈 그라운드에 대한 꿈은 자꾸 멀어져가는 듯 했다. 게다가 방출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상무나 경찰청 입대에 실패한 '현역 군인' 선수들은 구단의 '방출 리스트'에 1순위로 이름을 올리기 마련이다. 수술 후 오랜 시간 재활을 한 뒤에도 실패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2년여의 군생활은 그야말로 백지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김용의도 그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솔직히 군대에서 '야구 관두면 앞으로 뭘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걱정도 없었지만, '아, 이러다가 나도 야구를 관둘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김용의는 제대 후 이를 악물고 뛰었다. 마무리캠프 때부터 김기태 감독에게 "정말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부터 근성이 좋았는데, 예비역 병장의 '포스'까지 더한 것이다.
당시 유지현 수비코치는 "조금 모양새가 안 나오기는 하지만, 수비가 나쁘지 않다"며 "정성훈의 뒤를 맡길 만한 팀의 두번째 3루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의는 본업인 3루 뿐만 아니라, 내야 전포지션이 가능하다. 입대 전 유사시를 대비해 다른 포지션을 연습해 둔 게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는 김용의의 빠른 발과 숨겨진 타격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외야수비 훈련까지 시켰다. 좌우를 가리지 않기에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이 가능해졌다. 완벽한 멀티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김용의는 15일 현재 16경기서 타율 2할7푼6리 2도루 5득점 2타점을 기록중이다. 정성훈이 한동안 손목이 안좋아 수비에서 빠지면서 선발 기회를 잡기도 했다.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지만, 조용히 팀에 보탬이 돼왔다.
그랬던 그가 1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는 기어코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4-4 동점이 된 8회말 1사 1,3루 상황에서 최동수 대신 1루 대수비로 들어갔다. 야구의 묘한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투입되자 마자 유재웅의 타구가 김용의에게 향했다. 김용의는 높게 바운드된 공을 긴 팔을 이용해 잡아내, 홈으로 공을 뿌렸다. 3루주자 김성현은 협살에 걸려 태그아웃. 신장이 큰 김용의였기에 가능했던 수비다. 김기태 감독의 대수비 투입이 '신의 한 수'가 된 순간이다.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승리의 주역이 됐다. 김용의는 9회초엔 선두타자로 나서 깔끔한 우전안타로 출루했고, 서동욱의 3루타 때 홈을 밟아 결승득점을 올렸다. 9회말에도 김용의는 SK 정근우의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타구를 다이빙캐치하며 승리를 지키는 '결정적 수비'를 선보였다.
김용의는 "아직도 외야에 나가면 공이 안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날 본업이 아닌 1루에서도 침착한 수비를 보여줬듯, 점점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꺽다리 병장' 김용의는 이렇게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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