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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그는 왜 고개를 숙이는가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2-05-14 10:56


관중석에서 '이승엽!'을 외치면, 이승엽은 방수포 위로 몸을 던진다. 사실 이승엽 정도의 연차와 경력의 선수가 굳이 이럴 필요는 없다. 지난 1일 대구 두산전이 비로 취소된 뒤 이승엽이 방수포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대구=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이승엽은 왜 고개를 숙일까.

9년만에 한국 무대로 복귀한 이승엽은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 훈련과 자기관리에 있어선 늘 모범이 되려하며, 팀워크를 위해 마치 저연차 초년병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 홈게임때 야구장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마치 신인선수인 것처럼 훈련한다.

이승엽은 14일 현재 타율 3할6푼2리, 5홈런, 19타점을 기록중이다. 예전 이승엽을 기억하는 팬들은 임팩트가 다소 부족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시원시원한 타구는 확실히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가 훌륭한 타자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성적을 쌓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벌써 도루 3개를 기록중이다. 과거 이승엽이 한국에서 뛸 때 9년간 합계 35도루를 기록했다. 시즌 평균 3.9개였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이로 37세가 된 그가 한달여만에 벌써 3도루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밤늦게 술집에서 이승엽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원정때 강남의 술집에서 이승엽을 목격했다는 얘기들이 많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다. 맥주 한잔 정도를 따라놓고 있겠지만, 주 목적은 밥을 먹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승엽이 후배들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맛있는 요리를 파는 술집에 가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본래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이승엽은 푸짐하게 요리를 시켜놓고 야구선수들만의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그러니 삼성이 진 날, 이승엽과 술집에서 마주쳤다고 해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외국인선수를 챙기는 것도 이승엽이다. 대구에서 외국인투수 탈보트와 고든을 초청해 밥을 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이승엽 본인이 일본에서 8년간 '가이진(외국인·용병을 의미)'으로 생활했다. 타국의 프로리그에서 뛰는 외국인선수가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올시즌 삼성 외국인투수 2명이 연착륙 평가를 듣고 있는데, 이승엽의 역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승엽 합류가 삼성에 미치는 영향

이승엽이 2007년부터 요미우리와 4년 계약을 했을 때 대략 알려진 것만 해도 몸값 총액 30억엔(430억원)이었다. 실제로는 더 많았다는 루머도 있었다. 요미우리에서 4번타자로 뛰었다. 요미우리 4번타자란 존재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어디를 가나 경외심의 시선을 받으며 모두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는 자리였다. 그런 최고의 자리를 경험했던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거만함 없이 저연차 선수처럼 움직인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승엽이가 처신을 정말 잘해주고 있다. 사실 이승엽이란 선수를 다시 데려올 때 팀에서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왜 그 친구가 국민타자였는지를 지금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승엽의 삼성 합류는 경기력 면에서 장단점이 공존하는 문제였다. 장타력은 좋아진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팀 스피드는 느려지는 영향이 있다. 이승엽 본인이 발이 빠르지 않고, 그가 선발라인업에 어떤 형태로 기용되느냐에 따라 외야 라인이 다르게 구성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집중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승엽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전면에 부각되면 팀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003년 이승엽이 한시즌 56홈런으로 아시아신기록을 세웠지만 당시 김응용 감독은 이례적으로 후유증에 대해서 언급했다. "너무 한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면 다른 선수들이 상실감을 느낀다. 팀으로 봐선 좋을 게 없다"고 했다. 그해 포스트시즌 첫번째 스테이지에서 삼성은 SK에게 패했다. 이승엽도 당시 부담을 느끼며 팀이 패한 날에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 잠실구장에서 이승엽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2003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개월간 삼성의 최대 변화는 이승엽의 합류였다. 삼성에 돌아온 뒤, 일시적이긴 하지만 팀이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승엽은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다 보면 내가 부담을 갖게 되고 안 좋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언론 혹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다.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이승엽이 늘 자세를 낮추려는 이유가 엿보이는 얘기였다. '삼성의 이승엽'이길 원할 뿐, '이승엽의 삼성'은 아니어야한다는 의미다.

프로 18년차, 방수포에 몸을 던지다

13일 잠실구장. 이승엽이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스포츠음료 한박스를 들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아이스박스를 찾아냈는데 그 위에 투수 안지만의 가방이 떡 올려져있었다. "야! 안지만, 가방 치워라. 가방 버린다." 안지만이 원정 라커룸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안지만은 2002년 입단이다. 이승엽은 막내동생 대하듯 안지만에게 농담을 던졌다. LG 봉중근과도 이런저런 농담을 나눴고, LG 최고참 타자 최동수에겐 깍듯이 인사했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전훈캠프때 이승엽이 좀처럼 타구 비거리가 늘지 않아 팀 관계자들이 고민을 했다. 그러다 시범경기때 첫홈런이 나왔다. 당시 선수단의 많은 관계자들이 "승엽이 타구가 떴는데 또 펜스 앞에서 잡혔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게 훌쩍 넘어갔다. 첫홈런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덕아웃의 모든 멤버가 진정으로 기뻐했다고 한다. 국내 무대로 돌아온 이승엽이 팀과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의 연착륙을 모두가 원한 것이다.

과거의 이승엽은 탁월한 기량 덕분에 팀의 구심점이 됐다. 지금은 성적을 떠나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이 되려 한다. 젊은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밝게 하고, 비 때문에 경기가 취소되면 '방수포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하고. 발이 느린 이승엽의 한달여만의 도루 3개는 이같은 노력의 일부분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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