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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한상훈(32)이다. 한상훈은 지난 6일 삼성전에서 생애 처음으로 5타수 5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승리를 이끌었다.
화끈한 부활 신고식이었다. 시즌 초반 한상훈은 다소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4월까지 타율이 2할4푼4리로 작년 시즌 평균(2할6푼9리)에 크게 못미쳤다.
한상훈은 "가슴에 달린 C자(주장을 의미하는 이니셜)를 떼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희생정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에 많지 않은 나이에 주장을 달았던 한상훈이다.
그만큼 주변의 기대가 컸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 수비에서는 딱히 부족할 게 없는 플레이였지만 타석에서는 2% 부족했다. 2번 타자로 테이블세터의 한축을 형성해야 했지만 2번 자리를 붙박이로 사수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상훈은 "다른 선수들은 자기역할을 하는데 나만 제역할을 못하고 있구나. 나만 잘하면 될텐데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지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방망이가 돌아가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생각대로 안타를 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니 주장의 부담감까지 더해져 마음도 조급해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랬던 그가 5월 들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숨은 비법이 있었다. 한상훈에게 길을 알려준 이는 강석천 타격코치였다.
강 코치는 한상훈에 대해 기량보다 멘탈(정신적인)의 문제가 더 크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전수한 비법이 이른바 '전광판 외면 타법'이었다.
타석에 들어설 때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대형 전광판의 타율을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야구장 전광판에는 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타자가 바뀔 때마다 그날의 타석 현황과 시즌 타율 등의 기록이 표시된다.
타자가 타석에 서면 자연스럽게 전광판 쪽으로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타율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잘 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게 강 코치의 조언이었다.
대신 강 코치는 전광판을 쳐다보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우라고 충고했다. "100타수 중에 30번만 치자." 3타수-1안타로 생각하면 1안타가 버거워 보이지만 100타수씩 큰 단위로 나눠 생각하면 30안타는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발한 발상의 전환법이었다. 강 코치는 선수 시절에 이같은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에 한상훈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과연 효과는 대단했다. 위기의 한상훈을 구한 강 코치의 비법 덕분에 자신감도 높아졌다.
한상훈은 "이전에는 쫓기듯 타석에 들어가 무조건 쳐야한다는 조급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10번 나가서 3번만 치자고 마음 편하게 먹으니까 잘 맞기 시작했다"면서 "역시 야구는 멘탈경기인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