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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다승 감독 SUN, 카리스마에 가린 고뇌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4-30 14:26


2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시범경기 기아와 삼성의 경기를 앞두고 기아 선동열 감독이 훈련 중인 삼성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구=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3.29/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짙은 선글래스로 가려져 있었지만, KIA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바라보는 선동열 감독의 눈빛에는 고뇌가 뭍어있는 듯 했다.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고, 왼쪽 윗 입술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프로야구 감독이 된 이후 선 감독에게 이처럼 힘겨운 시절이 또 있었을까. 영광과 성취로 치장된 비단길마 걸었던 'SUN'은 지금 거친 자갈밭 위에 올라섰다. 어쩌면 일본 진출 첫 해 경험했던 실패에 비견될 만한 어려움이다.


22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릴 프로야구 KIA와 롯데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선동열 감독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4.22/
감독 데뷔 후 최악의 성적, 머리 아픈 SUN

KIA는 예상대로 4월을 힘겹게 보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범호와 외국인선발 호라시오 라미레즈가 부상으로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한 데 이어 시즌 개막 직후 거포 김상현도 손바닥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마무리 후보 한기주도 다쳤다. 주전들이 대부분 빠지면서 KIA가 4월에 고전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여지없이 적중했다.

이는 선 감독도 감지하고 있던 부분이다. 개막 초 선 감독은 "4월에는 일단 승률 4할로 버티는게 목표다. (주전들이 빠진) 이런 시기에 4할을 한다는 것은 보통 때 7~8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팀의 전력이 약화됐다는 뜻이다.

선 감독의 예상은 맞았지만, 목표는 어긋났다. 결국 KIA는 4월을 6승10패(승률 3할7푼5리), 7위로 마감하며 '승률 4할 달성'에 실패했다. 선 감독으로서는 2005년 삼성에서 처음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최악의 4월이다. 가장 성적이 안좋았던 2009년에조차 승률 5할(11승11패)을 지켜냈었다.

그러나 아무리 현역 8개 구단 감독 중 한국시리즈 최다우승(2회)에 감독 최다승(423승)의 풍부한 경험을 갖춘 선 감독일지라도 팀의 추락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어떻 시각에서 보면 그나마 선 감독이었기에 팀이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것만은 막아냈다고 볼 수 있다. KIA의 팀 전력은 최저 팀 타율(2할1푼8리)과 최저 팀 평균자책점(5.59), 최저 팀 홈런(4개) 및 최저 장타율(3할5리)에서 알 수 있듯 현 시점에서 8개 구단중 가장 떨어진다. 선 감독이 얼마나 고심하며 경기를 치러왔는 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그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었다. 지난 4월24일 광주 한화전이 열리기 전, 당시 KIA는 5승6패로 공동 5위를 기록하던 시점이다. 선 감독에게 '팀의 모든 기록들이 상당한 격차를 두고 최하위인데도 중위권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선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얼마나 머리가 아팠겠습니까. 요즘에는 차라리 지면 모르겠는데, 힘겹게 이기고 나면 뒷머리가 묵직하고 얼마나 피로가 몰려오는 지 몰라요". 1승을 위해 선수도 물론이거니와 선 감독도 온 힘을 쏟고 있다는 뜻이다.


땀방울에 스트레스를 녹여내다

그래도 당시에는 KIA가 중위권을 지키고 있을 때다. 이후 KIA는 1승4패를 당하며 다시 7위로 떨어졌다. 선 감독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도 이전보다 몇 배나 몰려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7일 두산과의 경기를 위해 잠실구장에 나온 선 감독의 윗입술 왼쪽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입술이 트자 생긴 것으로 보인다. 현역 은퇴 후에도 워낙 몸관리를 철저히 한 선 감독에게 입술이 부르터 물집이 잡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감독의 자리는 힘이 든다.

그런 선 감독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을 물었다. 현역 시절 술 좋아하기로 잘 알려졌던 선 감독은 "그냥 운동해서 땀흘리는 게 제일 좋습디다. 담배는 벌써 6~7년전에 끊었고, 술도 이제는 마셔봐야 몸만 힘드니 숙소 웨이트장에서 운동하는 걸로 풀죠"라고 말했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에도 매일 아침 1시간30분씩 속보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던 선 감독이다. 안 풀리는 4월 한 달간 선 감독은 러닝머신 위에서 흘리는 땀방울에 쌓인 스트레스와 답답한 속내를 녹여내고 있었다.

5월, KIA에 태양은 비출 수 있을까

어찌됐던 힘겨웠던 4월은 끝났다. 전체 시즌으로보면 약 12% 정도 밖에 진행되지 않은 시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적합한 시기다. KIA도 4월의 부진을 털어내고 5월을 재도약의 시기로 삼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선 감독은 "그나마 5월 초순 쯤 양현종과 라미레즈가 돌아오면 팀의 투수진을 좀 바꿔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수들로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선 감독은 "KIA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키워내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길게 보면 젊은 투수들을 키워내야 한다. 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겠다"며 마운드 체질개선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침체됐던 팀 타선을 살리기 위한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선 감독은 28일 잠실 두산전부터 안치홍을 2번에, 베테랑 김원섭을 3번에 기용했다. 이에 대해 "공격의 맥이 자꾸 끊겨서 득점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나마 타격감이 좋은 안치홍을 2번에 넣고, 좌타자 김원섭으로 뒤를 받치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로 시도한 안치홍-김원섭의 2, 3번 라인은 주말 두산전에서 꽤 소득을 올렸다. 이들은 이틀간 15타수6안타(타율 4할)에 5타점 5득점을 합작해냈다. 때문에 5월에도 당분간 안-김 라인은 가동될 전망이다. 허벅지 상태가 좋지 않은 이범호가 언제 돌아올 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라인업이 팀의 득점력 강화를 위한 가장 좋은 해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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