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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독이 있었나 싶다.
김 감독은 지난 27일 마무리투수 리즈를 2군으로 내리면서 다시 선발로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26일 잠실 넥센전에서 3연속 볼넷을 내주며 황당한 역전패의 원흉이 된 리즈였다. 사상 초유의 16연속 볼의 악몽이 가신 지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었다. 마치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리즈의 마무리 기용은 내 실수"라며 자신의 선택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했다. 리즈는 차명석 투수코치에게 "생소한 마무리투수로 뛰는 게 힘들다"고 고백했고, 김 감독과 차 코치는 힘들어하는 리즈를 배려해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감독으로서의 강단을 보여준 결정, 이를 뒤엎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줏대 없는' 감독으로 낙인 찍힐 수도 있다. 조금 과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철학,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깨끗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선수 탓'이 아닌 '내 탓', LG를 바꾸기 위한 선택
이 뿐만이 아니다. 김 감독은 지더라도 선수 탓을 하는 법이 없다. 리즈 케이스처럼 장기 레이스에 영향을 미칠 만한 판단 미스 외에 경기 도중 나오는 미세한 실수도 자기 탓으로 돌린다. 4월 한달간 김 감독은 '남 탓', 즉 선수 탓을 하는 법이 없었다.
보통의 감독들은 경기 도중 승패에 영향을 끼칠 만한 에러가 나와 경기에 패한다면, "실수 1개가 뼈아팠다"든지 "선수들의 집중력이 부족했다"는 식의 코멘트를 남기곤 한다. 선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도 경기를 지켜본 팬이라면 '누구 때문에 졌다'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감독 잘못이다"는 말로 선수들을 감싼다. 이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서 나온 대처법이다. LG는 9년 연속 4강 진출에 실패한 팀이다. 최근 성적은 팬들의 뜨거운 열기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때마다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강도는 컸다.
선수들은 항상 실수를 두려워했다. '두려움'에 지배되면서 자신의 플레이를 100% 보여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딘지 모르게 위축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책임 회피'라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었다. '모래알' 소리를 듣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감독이란 자리는 좀처럼 '내 실수'라는 말을 입에 담기 힘들다. 과거 모 감독은 "대한민국에 8명 밖에 없는 자리"라는 말을 남겼다. 성공에 대한 영광을 누리는 만큼,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자리다. 자책이 이어진다면, 점점 '능력 없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쉽사리 "내 탓이오"를 외치기 힘든 자리, 하지만 김 감독은 정반대로 이를 돌파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