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종범이 추억하는 영욕의 장면 best & worst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4-06 08:18


5일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이종범 선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달 31일 전격 은퇴 선언을 한 이종범은 4일 KIA타이거즈 김조호 단장과 면담을 갖고 구단이 제시한 은퇴식과 달았던 7번에 대한 영구 결번 제안을 받아들였다. 많은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이종범.
청담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2.4.5

아련한 기억의 한 페이지를 열어보는 것일까.

지난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은퇴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종범의 눈빛이 잠시 아득해진다. 그 눈빛 속에는 무수히 많은 영광의 순간과 또 그만큼이나 많은 좌절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그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이종범 스스로도 야구인생 34년 동안 교차한 '영광의 순간'과 '좌절의 순간'을 일일히 다 기억하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잊기 힘든, 아니 잊고싶지 않은 장면들이 분명히 있다. 은퇴석상에서 이종범이 밝힌 영광의 베스트 2장면과 좌절의 워스트 2장면을 소개한다.

베스트 1 : 1993년 10월26일 잠실

1993년, 그해 한국시리즈는 뜨거웠다.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해태는 삼성에 4차전까지 1승1무2패로 뒤졌으나 5, 6차전을 연달아 잡으며 3승1무2패로 간발의 리드를 잡았다. 한 번만 더 이기면 우승이었다. 운명의 7차전은 10월26일 잠실에서 열렸다.

신인 이종범은 정규시즌 타율 2할8푼으로 당시 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팀내 최고타율을 기록한다. 이같은 '겁없던 신인'에게 한국시리즈 무대는 신명나는 놀이판이었다. 5차전부터 펄펄 날기 시작한 이종범은 7차전의 승리를 불러왔다. 1회말 첫 타석에서 우전안타를 치고 나간 이종범은 간단히 2루를 훔쳤다. 이어 2번 이순철의 내야땅볼로 1사 3루. 곧바로 터진 3번 홍현우의 좌전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린다.

1-0으로 앞선 3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도 유격수쪽 내야안타로 출루한 뒤 다시 도루성공. 이로써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7연속 도루를 성공하며 통산 최다도루 타이(7개)기록을 세운다. 4회말 2사 1, 2루에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서는 좌전 적시타로 쐐기점마저 박았다. 결국 해태의 4대1 승리. 신인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종점은 기자단 투표결과 48표 중 45표를 얻는 압도적인 지지 속에 2승1세이브를 기록한 투수 선동열을 제치고 한국시리즈 MVP가 된다.

이종범은 "그때는 신인으로 들어와 멋모르고 뛰면서 거둔 첫 우승이었다"며 수많은 우승 경험 가운데 이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뽑았다.


2006년 3월16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8회 2타점 결승타를 치는 이종범. 스포츠조선 DB

베스트 2 : 2006년 3월16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6년 처음 만들어진 이 대회는 한 마디로 '야구의 월드컵'이었다. 야구 좀 한다하는 국가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 당연히 한국도 박찬호 김병현 이승엽 최희섭 등 해외파를 전부 소집해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해 대회에 출전한다. 일본과 미국, 멕시코 등을 연파하며 선전한 한국은 1라운드에 이어 3월16일 2라운드 3차전에서도 '숙적' 일본과 만났다. 라이벌답게 경기는 7회까지 0-0으로 팽팽히 맞선 상황이다. 그리고 이종범 앞에 운명의 순간이 펼쳐졌다.

8회초 한국 공격. 1사 2, 3루의 찬스에서 2번 이종범에게 찬스가 찾아왔다. 그런데 일본 벤치는 갑자기 스기우치를 내리고 후지카와를 등판시켰다. 볼카운트는 2B1S에서 4구째. 정말 딱 치기 좋은 코스로 직구가 들어왔다. 이종범은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치는 순간에 몸쪽 공으로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한복판에서 약간 바깥쪽이었다. 그만큼 공이 크게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따악~!' 이종범의 배트에 걸린 타구는 시원하게 좌중간을 갈랐다. 주자 2명이 모두 들어와 2-0. 이종범의 적시타로 인해 한국은 일본을 또 꺽었다. 그가 결승타를 치는 순간 두 팔을 뻗으며 1루로 달려나가는 장면은 아직도 한국야구사의 명장면 중 하나다.

워스트 1 : 1998년 6월23일 일본 나고야돔

97시즌 해태에서 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군 이종범은 야수 출신으로는 1호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팀 선배 선동열이 먼저 가 있던 주니치 유니폼을 입은 이종범은 특유의 타격센스와 빠른 발로 일본 무대에 적응해나갔다. 시즌 초반 센트럴리그 도루 1위에 타율 2할8푼대를 유지하며 한국야구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신의 질투라도 산 것일까. 6월23일, 이종범 야구인생 최악의 순간이 다가왔다. 홈구장인 나고야돔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 2-2로 맞선 4회말 2사 2루였다. 한신 선발은 우완 사이드암 가와지리.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라도 들었던 걸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이종범은 타석에 들어선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순간이 곧 찾아왔다. 가와지리가 던진 120㎞짜리 몸쪽 커브에 오른쪽 팔꿈치를 강타당하고 만 것.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이종범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뼈가 부러졌다는 판정을 듣고 만다. 3개월에 걸친 긴 재활기간이 이어졌고, 9월에야 간신히 1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가와지리의 공이 팔꿈치뼈를 부러트린 순간, 이종범의 일본 생활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2년 7월30일 광주 롯데전에서 6회말 롯데 투수 김장현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고 있는 이종범. 스포츠조선 DB
워스트 2 : 2002년 7월30일 광주구장

한해 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 무대에 복귀한 이종범은 해태 타이거즈를 이어받은 KIA 타이거즈의 중심으로 다시 본연의 위용을 되찾았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2002시즌. 국내 복귀 후 처음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이종범은 시즌 후반에 접어든 7월말까지 타격 10위(타율 0.306)와 득점 공동 2위(69득점), 도루 3위(28도루), 최다안타 5위(104안타)를 기록하며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7월30일 광주 롯데전. 6회 무사 2, 3루에서 이종범이 타석에 나섰다. 상대투수는 3년차 김장현. 이종범과 김장현의 승부는 볼카운트 2B2S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5구째. 몸쪽 스트라이크를 던지려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공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김장현이 던진 시속 140㎞짜리 직구는 이종범의 왼쪽 광대뼈 부위에 맞고 말았다. 결국 이종범은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보름 뒤 '검투사 헬멧'을 착용한 뒤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와 박수를 받았다.

이종범이 뽑은 영광과 좌절의 순간 4장면은 이종범 개인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지만, 한국 프로야구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장면들이다. 야구 팬들은 이종범이 환호할 때 같이 기뻐했고, 이종범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좌절하던 순간, 또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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