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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모이어-47세 야마모토, 은퇴를 모르는 투혼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3-13 15:18


우리 나이로 51세에 콜로라도 로키스 초청선수 신분으로 시범경기에 등판하고 있는 제이미 모이어. 사진캡처=콜로라도 홈페이지

프로 스포츠의 정점에 있는 프로야구 선수, 그들의 정년은 어느 선일까. 타석에서, 마운드에서, 그라운드에서 매 순간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기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한 선수라고 할만 하다. 보통 30대 초중반만 돼도 은퇴를 고민하게 된다. 매년 끊임없이 새 얼굴이 등장하고, 베테랑 선수들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시간은 무척 힘이 세다.

그런데 시간의 압박을 이겨내고,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씩씩하게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으로 시범경기에 출전 중인 왼손 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1962년 11월 생, 우리 나이로 51세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의 좌완투수 야마모토 마사히로는 1965년 생, KIA 타이거즈 이종범은 1970년 생이다.

통산 267승 204패 방어율 4.24. 모이어는 현역 메이저리그 투수 중 최다승과 최다패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감독을 해야 할 나이에 모이어의 야구시계는 여전히 씽씽 돌아가고 있다. 초청선수 자격으로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고 아들뻘인 동료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아들도 야구선수다. 아버지의 야구 열정을 보며 자란 아들 딜론은 2010년 드래프트 22순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됐고,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바인캠퍼스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기회가 주어진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해 3번째 시즌을 맞은 1984년 모이어는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1986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와 얼추 비슷한 행보다.


50세, 지천명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은퇴의 기로에 섰다. 2010년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9승9패, 방어율 4.84를 기록한 모이어는 시즌 중 오른쪽 팔꿈치를 다쳤다. 선수로서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 주위에서는 당연히 은퇴를 권유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걸 이뤘기에 훌훌 털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소속팀 필라델피아도 모이어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올시즌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인 주니치 투수 야마모토는 1965년 생. 올해도 주니치 투수진의 일원으로 개막전 출전이 유력하다. 사진캡처=주니치 홈페이지
당시 은퇴를 묻는 질문에 모이어는 이렇게 답했다. "은퇴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는 질문으로 남겨두고 싶다. 왜냐하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해가 내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난해가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었다. 2년 전, 아니면 5년 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모이어는 은퇴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2010년 11월 카리브해의 도미니카로 날아가 윈터리그에 참가했다. 하지만 다시 팔꿈치 부상이 왔다. 그해 12월 모이어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2011년 메이저리그에 모이어는 없었다. 그는 재활치료와 재활훈련을 해가며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의 해설자로 야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물론,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2012년 시즌 다시 마운드에 서겠다는 투혼이 살아 있었다.

모이어는 아직 활짝 꽃을 피지 못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젊은 선수들에게 희망이 될만하다. 267승 가운데 235승을 30세가 넘어서 거뒀다. 2010년 5월에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완봉승을 거뒀다.

모이어는 "나는 이미 3번이나 방출을 경험했다. 언제인가 은퇴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까지 은퇴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에게 아직 8명의 자녀에게 보여줄 게 많다. 누가 아는가. 1965년 59세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무쇠팔' 세철 페이지의 기록을 모이어가 깰지.

야마모토는 모이어보다 먼저 프로에 발을 디뎠다. 1983년 말 드래프트 5순위로 주니치와 계약해 1986년 1군 무대에 데뷔했다. 선동열 감독이 주니치 마무리로 뛸 때, 앞서 선발 투수로 나섰던 그 야마모토다.

야마모토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25년 간 한 해도 빠짐없이 등번호 34번을 달고 마운드에 올랐다. 2011년 그에게도 부상이 왔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오른쪽 발목을 다쳐 지난 시즌 1군과 2군을 통틀어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타격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KIA 이종범. 서프라이즈(애리조나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은퇴를 생각할 법도 한데 야마모토는 마운드에 서고 싶었다. 지난해 12월 이전 연봉에서 60% 이상 삭감된 4000만엔(추정·약 5억4500만원)에 재계약을 했다. 수억엔의 연봉을 받았던 전성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야마모토는 현역을 고집했다.

그렇다고 주니치가 예우 차원에서 야마모토를 잡은 게 아니다. 야마모토는 올해도 주니치의 실 전력이다.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은 야마모토를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일찌감치 개막전에 내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통산 210승, 160패, 방어율 3.44. 주니치의 전설이 된 야마모토의 마음은 벌써 개막전에 가 있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1993년 타이거즈 입단. 그동안 이종범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주인이 바뀌어 KIA 타이거즈가 됐고, 한동안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20년이 흘렀지만 변함없는 건, 이종범이 여전히 현역 선수라는 사실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43세. 최근 몇 년 간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이제는 은퇴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종범은 꿋꿋했다. 은퇴설이 나돌 때마다 "뛸 수 있을 때까지 그라운드에 남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말 KIA 지휘봉을 잡은 선동열 감독은 "이종범의 경험이 필요하다"며 은퇴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종범은 프로생활을 시작한 1993년에 태어나, 자신을 보며 야구 꿈을 키운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 선다.

야구팬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종범을 기억할 것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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