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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수많은 유망주가 그러하듯 2군을 전전하다 상무에 입대했다. 입대 전 3년간 대타나 대수비로 19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였다.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베테랑 정경배(현 SK 코치)는 물론 정근우 최 정 등 신인 선수들에게도 밀렸다. 그렇게 4년간 또다시 1,2군을 오가다 2009년 말 방출통보를 받았다. 9년 동안 68경기서 1할7푼1리(82타수 14안타)에 1홈런 6타점이라는 초라한 기록만을 남긴채 은퇴했다.
하지만 평생 했던 야구를 내려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김동건은 아마추어 야구인들을 위한 실내연습장을 열었다. 다시는 야구장 근처에 가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야구 밖에 먹고 살 길이 없었다. 프로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번 실패한 선수라는 딱지를 떼기가 힘들었다. 몸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김동건은 "구단에서 프로 경험이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보니 날 뽑은 것 같다. 내 실력은 한참 부족하다"고 말했다. 가을캠프 첫날 김동건은 임시주장으로 선발됐다. 그의 말대로 NC는 그가 최고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김동건은 주장으로 선임되고 "여기 나처럼 방출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선수들도 많다"면서 "우리 모두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자. 어쨌든 야구하러 이곳에 모인 것 아닌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야구만 하자"고 선수단을 다독였다.
NC 김경문 감독은 이런 김동건에 대해 "어수선할 수 있는 신생팀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대견하다"라며 "동건이 같이 아픔이 있는 선수들이 다시 빛을 봤으면 한다"고 했다. 김동건이 김 감독의 바람대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 수 있을까. 그날을 기다리며 김동건은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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