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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감독, 손가락 8개 폈던 숨은 사연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1-01 14:00


늘 농담을 많이 하지만 그 어떤 지도자보다 냉철함을 갖춘 류중일 감독이다. 류 감독이 31일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숙소에서 열린 축승회에서 선수단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삼성 류중일 감독이 미디어데이에서 손가락 8개를 폈던 사연을 이제 공개한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지난 24일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어느덧 미디어데이의 전통 이벤트가 돼버린 '몇차전까지 예상하는 지 손가락으로 표시해달라'는 주문이 이번에도 있었다.

이때 류중일 감독은 양 손을 이용해 손가락 8개를 폈다. 곁에 있던 삼성 포수 진갑용이 약간 놀라서 "잘못 펴신 것 아니십니까"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실수가 절대 아니었다. 류 감독은 처음부터 8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앞서 시리즈 대비 훈련을 할 때였다. 류중일 감독은 주위 지인들에게 "몇차전까지 간다고 말하는 게, 손가락을 몇 개 펴는 게 좋겠는가"라고 계속 물어봤다. 이런저런 답들이 나왔다. "그냥 4개만 펴시라. 작년에 4연패로 졌으니 이번에 되갚아준다는 의미다", "주먹 쥐고 엄지만 펴시라. 그러면 접은 손가락 4개만큼 이겨서 우승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평범하게 6개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등 의견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류 감독의 관심을 사로잡은 의견이 바로 손가락 8개였다. 한국시리즈가 팽팽하게 진행되면서 한차례 무승부가 나올 것이고 결국 4승1무3패로 삼성이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상대 능력에 대한 배려와 함께 결국엔 접전을 치르더라도 승리한다는 뜻이다.

류중일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도 절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디어데이처럼 팬들과 접할 수 있는 행사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를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실전에서 어떻게 진행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손가락 몇 개를 펴든 무슨 상관인가. 결국 류 감독은 '재미와 흥미'를 위해 8개를 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류 감독을 재미있는 것만 좋아하는 가벼운 지도자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속마음은 이미 따로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즈에 앞서 류중일 감독에게 "진짜 속마음은 몇승몇패를 생각하시는가"라고 질문했다. 류 감독은 "4승1패. 아닐 것 같으면 나랑 내기 걸자"라고 답했다. 결국엔 류 감독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처럼 류 감독은 '팬 프렌들리'를 위한 유쾌한 행동 속에서도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는 능력을 갖췄다. 승부처에서 골프의 '버디 세리머니'처럼 주먹을 흔들고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 박수를 아끼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음 상황을 계산하고 있는 냉철함이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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