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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야만 합니다. 아들이 보고 있는걸요."
시즌 때와는 조금 다른 기용법이다. 정우람은 지금껏 맨 뒤에 나오는 마무리 투수가 아니었다. 지난 5월18일 인천 롯데전에서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개인통산 100홀드를 기록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의 정우람은 마무리의 앞에 나오는 '필승 계투요원'이었다. 경기 리드를 잡을 경우 마무리 정대현의 앞에서 7, 8회쯤 등판했다. 빠르면 6회쯤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는 약간 기용방식이 달라졌다.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0-1로 뒤지던 7회에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던질 때까지는 페넌트레이스와 비슷한 기용패턴이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2-2로 맞서던 연장 10회초 팀의 네 번째 투수로 나왔다. 정우람이 했던 역할은 박희수가 대신했고, 정우람은 정규시즌과 달리 정대현의 뒤에 나왔다. 결국 연장 11회말 이호준의 끝내기에 힘입어 정우람은 승리투수가 됐다.
팀으로서는 이기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정우람은 이런 등판 패턴에 대해 사실 낯설어하고 있다. 17일 덕아웃에서 만난 정우람은 "시즌 때는 주로 대현이 형 앞에 나왔는데, 요즘에는 맨 뒤에 나오게 돼서 부담이 된다. 내가 무너지면 팀이 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당연히 드는 생각일 수 있다. 그래도 정우람은 이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승리를 위한 의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들이 보고 있다는 책임감이 큰 까닭이다. 정우람은 "마운드에 서면 우리 대한이가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당연히 잘 할 수 밖에 없다. 아들에게 약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수는 없다"고 했다. 그 순간, 정우람은 아버지의 책임감을 짊어진 완연한 사내의 존재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부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