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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왼손 투수를 이겨낸 SK 박정권의 집중력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1-10-17 21:30


SK 박정권이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0-3으로 뒤진 7회초 무사 1,2루 때 롯데 좌완 계투 강영식의 4구째를 통타해 좌중간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왼손 타자의 천적은 왼손 타자다?

야구계에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명제다. 실제 각 팀마다 왼손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원포인트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시즌 중에는 경기 중·후반 쯤에 상대 왼손타자가 나올 때 왼손 불펜을 투입해 위기를 넘기는 상황이 자주 나오고, 꽤 높은 확률로 왼손 투수가 왼손 타자를 범타처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왼손 투수와 왼손 타자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왼손 투수가 던지는 공은 좌타석에 있는 타자들에게는 보다 빠르고 위협적으로 들어온다. 왼손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좌타석에 있는 타자들에게 더 가까이 나오는데다가 공의 로케이션도 좌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까닭. 바깥쪽 공도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멀리 빠져나가기 때문에 공략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이것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변수가 많고, 승부가 상대적인 야구의 특성상 왼손 투수도 왼손 타자에게 얻어맞는 현실이 생긴다.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SK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그랬다.

SK가 0-3으로 뒤진 7회초 공격. 이전까지 6이닝 동안 4안타 2볼넷 6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롯데 선발 송승준이 흔들리며 내야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1, 2루 위기를 자초했다. 대기 타석에는 SK 이만수 감독대행이 늘 "팀의 핵심선수"라고 강조하는 왼손 타자 박정권이 있었다.

그러자 롯데 양승호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당연한 투수교체 타이밍이다. 양 감독이 호출한 인물은 롯데의 좌완 스페셜리스트 강영식. 다분히 박정권을 처리할 목적을 지닌 카드였다. 박정권은 올해 왼손 투수를 상대로 타율 2할3푼8리로 저조했다. 강영식과는 5차례 만나 무안타였다. 볼넷만 2개 얻어냈다. 철저히 막힌 셈이다. 그런데 강영식 카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들의 승부를 돌아보자.

왼손 투수, 그리고 하필 강영식이라는 점 때문에 박정권은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3점차로 뒤진 무사 1, 2루임에도 첫 타석부터 번트자세를 취했다. 벤치의 지시라기 보다는 스스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강영식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한번 쳐보라'는 듯 초구를 가운데로 꽂았다. 시속 145㎞짜리 직구. 결국 박정권은 들이댔던 배트를 걷어들이고 가만히 선 채 스트라이크를 당했다. 강영식의 자신감은 더 커졌다.

2구째는 바깥쪽 슬라이더(시속 137㎞)였다. 박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번트를 댔지만, 3루쪽 파울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순식간에 볼카운트는 2-0. 이제는 번트를 대기 힘들다. 3구째는 144㎞짜리 직구. 높은 코스로 들어온 볼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강영식의 자신감은 높았다.


그러나 너무 강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4구째가 너무 안일했다. 가운데로 몰린 145㎞짜리 직구. 박정권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가볍게 맞힌 타구는 유격수의 키를 살짝 넘긴 안타가 됐고, 그 사이 2루주자 최 정이 홈을 밟아 1-3이 됐다. 대결은 이렇게 매우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박정권의 승리로 끝났다.


부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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