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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타자의 천적은 왼손 타자다?
하지만, 이것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변수가 많고, 승부가 상대적인 야구의 특성상 왼손 투수도 왼손 타자에게 얻어맞는 현실이 생긴다.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SK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그랬다.
SK가 0-3으로 뒤진 7회초 공격. 이전까지 6이닝 동안 4안타 2볼넷 6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롯데 선발 송승준이 흔들리며 내야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1, 2루 위기를 자초했다. 대기 타석에는 SK 이만수 감독대행이 늘 "팀의 핵심선수"라고 강조하는 왼손 타자 박정권이 있었다.
왼손 투수, 그리고 하필 강영식이라는 점 때문에 박정권은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3점차로 뒤진 무사 1, 2루임에도 첫 타석부터 번트자세를 취했다. 벤치의 지시라기 보다는 스스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강영식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한번 쳐보라'는 듯 초구를 가운데로 꽂았다. 시속 145㎞짜리 직구. 결국 박정권은 들이댔던 배트를 걷어들이고 가만히 선 채 스트라이크를 당했다. 강영식의 자신감은 더 커졌다.
2구째는 바깥쪽 슬라이더(시속 137㎞)였다. 박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번트를 댔지만, 3루쪽 파울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순식간에 볼카운트는 2-0. 이제는 번트를 대기 힘들다. 3구째는 144㎞짜리 직구. 높은 코스로 들어온 볼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강영식의 자신감은 높았다.
그러나 너무 강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4구째가 너무 안일했다. 가운데로 몰린 145㎞짜리 직구. 박정권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가볍게 맞힌 타구는 유격수의 키를 살짝 넘긴 안타가 됐고, 그 사이 2루주자 최 정이 홈을 밟아 1-3이 됐다. 대결은 이렇게 매우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박정권의 승리로 끝났다.
부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