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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단기전 승부가 한번씩 끝날 때마다 '착시현상'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긴 팀의 라인업은 천하무적처럼 보이고, 패배한 팀은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SK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경기를 풀어나간다는 걸 증명한 장면이 12일 4차전에서도 나왔다. 0-0으로 진행되던 게임은 3회에 균형이 무너졌다. SK가 1사 1,2루 기회를 잡았고 여기서 SK 최 정의 좌월 2루타가 터졌다. 이때 SK는 1루주자까지 홈을 밟았다. 2-0이 되면서 SK가 사실상 기세를 장악한 순간이 됐다.
이 장면을 확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루타때 1루주자까지 홈인하는 게 아주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선 '디코이 플레이'라 부르는 이 동작에는, 상대 주자의 움직임에 한 타이밍 정도 브레이크를 걸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일종의 주자 기만 동작이다. 혹시 타구를 잡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주자에게 심어주면, 주자는 한차례 멈칫하는 것만으로도 한 베이스를 손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1루주자 박재상은 기민했다. 박재상은 딱 하고 타구음이 나는 순간부터 곧바로 달렸고, 김상현의 동작에 아랑곳없이 멈칫하지 않고 끝까지 내달렸다. 물론 이 타구는 워낙 잘 맞았기 때문에 판단하는 게 그리 까다롭지는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경험이 적은 선수는 분명 멈칫할 여지가 있다.
박재상은 시즌 막판부터 장딴지가 아파 고생했던 선수다. 본래 갖고 있던 주루 능력을 100%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판단이 2점째 득점을 가능케했다. 이는 곧 최근 몇년간 박재상이 순간적인 타구 판단이 가능할 만큼 많은 훈련을 해왔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런 부분이다. 세세한 플레이 하나가 단기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데, SK 선수들은 대체로 이런 면에서 강하다. SK와 관련된 '착시현상'은 단순히 라인업에서 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플레이 때문인 듯 보인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