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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감독. 언제 사퇴 결심 했나?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1-10-07 11:17


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삼성과 LG의 경기가 열렸다. 사퇴의사를 밝힌 LG 박종훈 감독이 감독석이 아닌 벤치에서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잠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1.10.06.


"나중에 유니폼을 벗으면,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요."

LG 박종훈 감독이 2년만에 낙마했다. 6일 잠실 삼성전을 앞두고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박 감독은 사퇴 이유에 대해 "LG는 좋은 팀이고, 구단의 도움은 물론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내가 부족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성적이 떨어지면서 마음 속으로 결정하고 있었다"면서 "구체적인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심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의 말대로 고심은 오랜 시간 계속됐다. 지난 8월17일이다. 잠실 두산전이 우천취소된 뒤 감독실에서 그를 만났다. 일찌감치 취소가 결정되어 취재진도 없던 상황. 박 감독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했다. 감독실 한켠에 마련된 책장 가득 꽂혀 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더 부지런해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서적에서 팀 운영에 대한 영감을 얻은 듯 했다.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박 감독은 뜬금없이 "유니폼을 벗으면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는 정말 편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전제한 뒤 성적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8명 밖에 앉지 못하는 자리가 프로야구 감독직이다. 최고의 영광이자 큰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라고 말했다. 곧이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는 추락하는 성적 탓에 LG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시기였다. 1주일 전 광주 원정을 떠나면서는 일부 팬과 선수간에 충돌이 있었고, 한차례 항의 시위 후 팬들의 청문회 요구도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 박 감독은 전날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남겨 민심을 달래려 노력하기도 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날은 김성근 전 SK 감독이 시즌 후 자진 사퇴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 날이었다.

박 감독은 그의 말대로 책임을 지려 했다. 신인 임찬규가 6월17일 잠실 SK전서 4연속 볼넷으로 무너졌을 때도 "임찬규를 고집한 건 자신"이라며 실수를 인정했다. 또한 전반기 막판 박현준-주키치-리즈의 불펜 등판에 대해서도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변칙 등판으로 인한 데미지가 컸다"고 밝혔다. 모두 올시즌 LG에겐 두고두고 아쉬운 결정적 장면이다. 홈페이지 사과문으로도 분위기가 진정되지 않자 팬들의 청문회 때는 직접 팬들 앞에 섰다. 그리고 9월말에 5위 자리마저 위태로워지자 "이렇게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성적을 내지 못한 건 모두 내 책임"이라며 사퇴를 암시하기도 했다.

박종훈 감독은 결국 쓸쓸히 떠나야만 했다. 8월17일, 감독실에 앉아있던 그는 "팀 컬러는 천천히 바뀔 수 밖에 없다"며 자신의 야구를 더 보여주고 싶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힘은 없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던 모습 뿐이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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