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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의 말대로 고심은 오랜 시간 계속됐다. 지난 8월17일이다. 잠실 두산전이 우천취소된 뒤 감독실에서 그를 만났다. 일찌감치 취소가 결정되어 취재진도 없던 상황. 박 감독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했다. 감독실 한켠에 마련된 책장 가득 꽂혀 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더 부지런해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서적에서 팀 운영에 대한 영감을 얻은 듯 했다.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박 감독은 뜬금없이 "유니폼을 벗으면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는 정말 편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전제한 뒤 성적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8명 밖에 앉지 못하는 자리가 프로야구 감독직이다. 최고의 영광이자 큰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라고 말했다. 곧이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그의 말대로 책임을 지려 했다. 신인 임찬규가 6월17일 잠실 SK전서 4연속 볼넷으로 무너졌을 때도 "임찬규를 고집한 건 자신"이라며 실수를 인정했다. 또한 전반기 막판 박현준-주키치-리즈의 불펜 등판에 대해서도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변칙 등판으로 인한 데미지가 컸다"고 밝혔다. 모두 올시즌 LG에겐 두고두고 아쉬운 결정적 장면이다. 홈페이지 사과문으로도 분위기가 진정되지 않자 팬들의 청문회 때는 직접 팬들 앞에 섰다. 그리고 9월말에 5위 자리마저 위태로워지자 "이렇게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성적을 내지 못한 건 모두 내 책임"이라며 사퇴를 암시하기도 했다.
박종훈 감독은 결국 쓸쓸히 떠나야만 했다. 8월17일, 감독실에 앉아있던 그는 "팀 컬러는 천천히 바뀔 수 밖에 없다"며 자신의 야구를 더 보여주고 싶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힘은 없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던 모습 뿐이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