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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김기태 수석 코치가 삭발한 이유

신창범 기자

기사입력 2011-08-21 14:38


"가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LG 김기태 수석코치(42)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야구인 중 한명이다. 각종 타이틀을 거머쥐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경험했다.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프로야구 3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프로야구 레전드 올스타에서 지명타자 부분에서 당당히 뽑혔다. 은퇴후 일본에서 지도자 수업을 했다. 일본 최고 명문팀인 요미우리 2군에서 연수를 받던 김 코치는 정식 2군 코치까지 올라갔다. 하라 감독이 김 코치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 직접 임명했다. 특히 김 코치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타격코치를 맡아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했다. 지도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하자 LG는 지난해 시즌을 앞두고 김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올시즌 전반기까지 LG 2군을 이끌던 김 코치는 올스타전 이후 1군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팀 성적이 떨어지자 박종훈 감독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김 코치를 1군으로 불러 올린 것이다.

김 코치가 1군에 올라온 뒤에도 팀은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지난 18일엔 잠실 두산전에서 LG가 패하자 팬들의 청문회까지 열리고 말았다.

수천명의 팬들은 대구로 이동해야 하는 선수단의 버스를 둘러싸고 박 감독의 사과를 요구했다. 워낙 많은 팬들이 운집해 이동이 불가능하자 박 감독은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을 김 코치도 함께 지켰다.

물병이 날아오고,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팬들의 욕설을 그냥 듣고만 있어야 했다. 박 감독이 빨간색 메가폰을 들고 팬들에게 사과를 하고 나서야 선수단은 이동할 수 있었다.

대구로 내려오는 내내 김 코치는 가슴이 먹먹했다.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모시는 감독이 팬들 앞에서 작아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새벽에 도착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샌 김 코치는 아침 일찍 숙소 안 이발소를 찾았다.


"삭발 해 주십시요."

이날 박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김 코치의 머리는 하얗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서용빈 타격코치, 염경엽 수비코치, 김정민 배터리코치도 조용히 머리를 잘랐다.

그 이유에 대해선 그 누구도,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야구를 하면서 가장 부끄러운 날이었다. 내 스스로 독한 마음을 먹고 싶어서 머리를 잘랐다"고 짧게 말했다.

김 코치의 삭발이 선수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LG 선수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김 코치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바로 이 같은 독기다.


대구=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LG 김기태 수석코치가 팬들의 청문회 이후 더욱 독한 마음을 품기 위해 과감히 삭발을 했다. 스포츠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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