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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몸쪽공, 맞아도 던진다.'
억울한 '트러블메이커' KIA 트레비스
KIA 용병 좌완투수 트레비스는 올 시즌 종종 다른 팀 타자들과 언쟁을 벌였다. 성격 자체가 예민하고, 쉽게 흥분하는 면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해로 발생한 일도 있다.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채태인과의 언쟁이 그런 케이스인데, 역시 '몸쪽 공'이 사단이었다.
채태인이 이미 2구째에 무언의 경고를 했음에도 트레비스는 왜 2개의 공을 더 몸쪽으로 붙이다가 사구를 내주며 시비에 휘말렸을까. 정황상 빈볼은 아니다. 트레비스는 그저 최선의 코스라고 생각한 몸쪽으로 공을 던졌을 뿐이다. 채태인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지만, 그 또한 심리전의 일부. 그래서 트레비스는 개의치 않고 다시 몸쪽으로 공을 던졌다. 그러나 이날 제구력이 트레비스의 의도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그게 사구로 이어지고 말았다.
최근 트레비스는 시즌 초반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날 등판을 앞두고서도 허리나 허벅지 쪽이 좋지 않았다. 냉정하게 성적으로 평가받는 용병 입장에서는 이번 등판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트레비스의 입장에서는 사구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몸쪽으로 공을 던지게 된 것이다.
롯데, LG 리즈의 몸쪽 공을 노렸다.
잠실 롯데전에 등판한 LG 리즈도 트레비스와 비슷한 심리상태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리즈는 4연패 중이다. 이날 경기까지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은 몸쪽 공의 잦은 구사로 이어졌다. 변화구 제구력이 좋지 않은 탓에 자신의 주무기인 빠른 볼을 몸쪽으로 바짝 붙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롯데는 이미 리즈가 이런 패턴으로 승부를 걸어오리라는 점을 분석하고 있었다. 2-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던 6회초. 1사후 7번 조성환은 리즈가 몸쪽으로 타이트하게 던진 공을 절묘하게 잡아당겨 좌전 2루타를 쳐 냈다. 이어 2사 2루에서 9번 문규현도 역시 리즈가 몸쪽으로 던진 공을 받아쳐 좌전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2-0과 3-0의 차이는 1점일 뿐이지만, 지는 입장에서는 심리적인 차이가 크다. 롯데 팀 관계자는 "조성환과 문규현의 안타는 미리 몸쪽을 대비하지 않았다면 치기 힘든 코스였다"고 설명했다. 롯데 타자들이 그만큼 미리 대비를 했다는 증거다.
실제로 이날 리즈는 전체적으로 몸쪽 승부를 많이 했다. 손아섭을 제외하고 8명의 선발이 전부 우타자였는데, 마치 위협구처럼 들어온 공도 여러차례였고, 조성환과 황재균은 몸에 맞을뻔했다. 결국 이런 패턴 속에 강민호가 희생자가 됐다. 강민호는 3회초 2사 2,3루에서 150㎞의 초구에 어깨를 맞았다. 그러나 이 역시 리즈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4연패를 탈출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몸쪽 공을 던지게 했고, 그것이 의도와 빗나간 코스로 가며 강민호를 때린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투수의 적극적인 몸쪽 승부에 관대한 편이다. 타자 역시 이를 역으로 이용해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는 일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 길들여진 용병들은 국내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몸쪽 승부를 걸어온다. 의도치 않은 사구나 장타를 얻어맞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결국 몸쪽으로 던져야 하는 것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