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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왜 SK가 아닌 한화에서 뛰고 있지?"
해당 팀 팬들의 눈엔 볼수록 아까운 선택. 그런데 그땐 나름대로 다 곡절이 있었다.
류현진, 고교 시절엔 A급 아니었다
류현진은 2차지명에서도 두번째로 선택됐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는 KIA가 한기주를 1차지명으로 뽑자 나승현을 지명했다. 롯데 역시 팔꿈치 수술을 한 류현진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고, 2002년부터 3년 연속 꼴찌를 한 롯데로선 즉시 투입이 가능한 확실한 자원인 나승현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류현진은 2순위였던 한화의 차지가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고2까지 무명 윤석민 , 최 정에 밀리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다. 워낙 많은 인재들이 나와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의 선택에 윤석민 오승환 정근우의 운명도 바뀌었다. 윤석민의 연고구단은 SK였다. 그러나 SK는 1차지명으로 최 정(유신고)을 뽑았다. 당시 내야수가 부족했던 팀 사정이 반영됐다. 최 정은 천재적인 타격솜씨를 뽐내고 있었고 멀티 플레이어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윤석민은 2학년때 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다. 그러다보니 스카우트들의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었다. 3학년 때 140㎞대를 던지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초특급 투수의 구위를 뽐내지는 못했다. SK는 2차지명에서 윤석민을 뽑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7번째 순위였던 SK 바로 앞의 6번째 KIA가 먼저 지명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KIA는 폼이 예뻤던 윤석민을 뽑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예상대로 앞순위 팀이 찍지 않자 주저없이 윤석민을 불렀다. 윤석민을 놓친 SK는 내야수로 파이팅이 넘치는 정근우(부산고-고려대)를 뽑았다.
팔꿈치 수술 오승환, 살짝 관심 밖
그럼 롯데는 왜 정근우를 놓쳤을까. 당시 부산에 유망주들이 많아 롯데로선 고민을 많이 했다. 이왕기와 정의윤(이상 부산고) 조정훈(용마고) 정근우 등이 리스트에 있었다. 일단 145㎞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스로 이왕기를 1차지명으로 선택한 롯데는 2차 1라운드 1순위로 투수 조정훈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마운드 강화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윤은 3순위로 LG에 갔고, 정근우는 7순위로 SK에 둥지를 틀었다.
오승환(경기고-단국대)은 팔꿈치 부상 때문에 2001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으나 2005년 드래프트에선 당당히 2차 1라운드 5번으로 삼성에 지명됐다. 워낙 좋은 인재가 많았던데다 오승환은 팔꿈치 수술 경력을 갖고 있어 다른 팀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삼성은 구위를 믿고 뽑았고, 오승환은 2005년 신인왕에 올랐다.
삼성, 그때는 이정식이 강민호 보다 컸다
롯데는 포수 강민호를 2004년 드래프트 2차 3번(전체 17순위)으로 지명했다. 강민호의 고교 연고팀 삼성은 바로 앞선 2차 2번(16순위)지명에서 같은 포수인 이정식(장충고-경성대)을 뽑았다. 당시 강민호를 뽑았던 롯데 윤동배 상동야구장 소장은 "강민호가 2차 2라운드에서 뽑힐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명되지 않고 우리 차례까지 오는 바람에 즉석에서 계획을 바꿔 강민호를 뽑았다"며 "우리로선 행운이었다"라고 했다. 삼성도 강민호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몇 년 걸려 성장할 포수보다는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 필요했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삼성 이성근 운영팀장은 "당시엔 주전 진갑용의 백업 포수가 절실했다. 강민호도 좋은 재목이었지만 그때는 송구능력이 뛰어난 이정식을 뽑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SK가 2005년 윤석민, 2006년 류현진을 뽑아 김광현까지 세 명의 에이스를 보유했더라면 과연 야구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른 구단으로선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미래를 알고 뽑는다면 좋겠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지명하는 순간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각구단의 미래를 뽑는 2012년 드래프트는 오는 8월 16일에 열린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