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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역사의 후회. 그 이유는.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1-07-24 14:13


류현진의 2005년 동산고 시절 모습과 2011년 한화 유니폼을 입은 모습. 스포츠조선DB

"류현진이 왜 SK가 아닌 한화에서 뛰고 있지?"

한화 류현진이 호투를 할 때마다 야구팬들의 시선은 SK로 쏠린다. 류현진은 인천 동산고 출신. 부모도 여전히 인천에서 살고 있다. 2006년 데뷔하자 마자 신인왕과 MVP를 동시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된 류현진을 연고팀 SK가 잡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류현진 뿐 아니다. 연고팀 대신 다른 팀에 지명돼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 선수는 꽤 많다. 대구팬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오승환은 서울 출신이고, 롯데 강민호는 제주가 고향이지만 포철공고를 졸업했다. KIA의 에이스 윤석민은 경기도 성남의 야탑고를 졸업했다. SK의 정근우는 부산고에서 추신수와 함께 야구를 했다. 연고지로 보면 오승환은 두산이나 LG, 강민호는 삼성, 윤석민은 SK, 정근우는 롯데에서 뛰어야 맞다.

해당 팀 팬들의 눈엔 볼수록 아까운 선택. 그런데 그땐 나름대로 다 곡절이 있었다.

류현진, 고교 시절엔 A급 아니었다

류현진은 사실 고등학교 시절엔 톱클래스가 아니었다. 2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받고 1년을 통째로 쉬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수술 경력이 걸림돌로 작용해 부상 재발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3학년 때 투구 역시 초특급이 아니었다. 140㎞ 초반 정도의 구속으론 당시 150㎞를 던지던 한기주(동성고) 나승현(광주일고) 유원상(천안북일고)의 '톱3'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다. SK는 2006년 신인 1차지명에서 류현진 대신 인천고 포수 이재원을 선택했다. 박경완의 뒤를 이을 포수를 찾고 있던 차에 앞선 2001년 1차지명으로 데려온 정상호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자 거물급 포수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이재원을 뽑았다.

류현진은 2차지명에서도 두번째로 선택됐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는 KIA가 한기주를 1차지명으로 뽑자 나승현을 지명했다. 롯데 역시 팔꿈치 수술을 한 류현진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고, 2002년부터 3년 연속 꼴찌를 한 롯데로선 즉시 투입이 가능한 확실한 자원인 나승현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류현진은 2순위였던 한화의 차지가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고2까지 무명 윤석민 , 최 정에 밀리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다. 워낙 많은 인재들이 나와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의 선택에 윤석민 오승환 정근우의 운명도 바뀌었다. 윤석민의 연고구단은 SK였다. 그러나 SK는 1차지명으로 최 정(유신고)을 뽑았다. 당시 내야수가 부족했던 팀 사정이 반영됐다. 최 정은 천재적인 타격솜씨를 뽐내고 있었고 멀티 플레이어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윤석민은 2학년때 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다. 그러다보니 스카우트들의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었다. 3학년 때 140㎞대를 던지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초특급 투수의 구위를 뽐내지는 못했다. SK는 2차지명에서 윤석민을 뽑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7번째 순위였던 SK 바로 앞의 6번째 KIA가 먼저 지명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KIA는 폼이 예뻤던 윤석민을 뽑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예상대로 앞순위 팀이 찍지 않자 주저없이 윤석민을 불렀다. 윤석민을 놓친 SK는 내야수로 파이팅이 넘치는 정근우(부산고-고려대)를 뽑았다.

팔꿈치 수술 오승환, 살짝 관심 밖

그럼 롯데는 왜 정근우를 놓쳤을까. 당시 부산에 유망주들이 많아 롯데로선 고민을 많이 했다. 이왕기와 정의윤(이상 부산고) 조정훈(용마고) 정근우 등이 리스트에 있었다. 일단 145㎞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스로 이왕기를 1차지명으로 선택한 롯데는 2차 1라운드 1순위로 투수 조정훈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마운드 강화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윤은 3순위로 LG에 갔고, 정근우는 7순위로 SK에 둥지를 틀었다.

오승환(경기고-단국대)은 팔꿈치 부상 때문에 2001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으나 2005년 드래프트에선 당당히 2차 1라운드 5번으로 삼성에 지명됐다. 워낙 좋은 인재가 많았던데다 오승환은 팔꿈치 수술 경력을 갖고 있어 다른 팀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삼성은 구위를 믿고 뽑았고, 오승환은 2005년 신인왕에 올랐다.

삼성, 그때는 이정식이 강민호 보다 컸다

롯데는 포수 강민호를 2004년 드래프트 2차 3번(전체 17순위)으로 지명했다. 강민호의 고교 연고팀 삼성은 바로 앞선 2차 2번(16순위)지명에서 같은 포수인 이정식(장충고-경성대)을 뽑았다. 당시 강민호를 뽑았던 롯데 윤동배 상동야구장 소장은 "강민호가 2차 2라운드에서 뽑힐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명되지 않고 우리 차례까지 오는 바람에 즉석에서 계획을 바꿔 강민호를 뽑았다"며 "우리로선 행운이었다"라고 했다. 삼성도 강민호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몇 년 걸려 성장할 포수보다는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 필요했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삼성 이성근 운영팀장은 "당시엔 주전 진갑용의 백업 포수가 절실했다. 강민호도 좋은 재목이었지만 그때는 송구능력이 뛰어난 이정식을 뽑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SK가 2005년 윤석민, 2006년 류현진을 뽑아 김광현까지 세 명의 에이스를 보유했더라면 과연 야구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른 구단으로선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미래를 알고 뽑는다면 좋겠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지명하는 순간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각구단의 미래를 뽑는 2012년 드래프트는 오는 8월 16일에 열린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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