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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가 볼모인가?' 또 다시 신음하는 한국 e스포츠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2-08-26 14:14 | 최종수정 2012-08-26 14:15


출발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같이 발전을 도모하자던 상생의 목소리는 쑥 들어갔고, 그 자리엔 과거부터 이어진 앙금만이 도사리고 있다.

조금씩의 양보도 없는 '치킨게임'의 형국이다. 한쪽은 발단을 제공했고, 다른 한쪽은 일말의 배려도 없다.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함께 망하자'는 분위기다. 당장 아쉬운 쪽이 고개를 숙이라 요구하지만 만약 이 순간이 지나간다면 결국 함께 하기 힘든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 극단의 이기주의 속에 한국 e스포츠는 또 다시 갈 길을 잃고 있다.

지난 21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조 지명식을 치른 후 28일 '스타크래프트2' 종목으로 열리는 첫 스타리그인 '옥션 스타리그 2012'가 시작부터 파행 운영이 예상된다. 기존 '스타2'를 활용한 GSL(글로벌 스타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e스포츠연맹 소속팀과 선수들이 한국e스포츠협회의 결정에 반발하며, 스타리그 출전을 유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이에 대한 원인과 이후 추이를 진단해본다.

스타리그가 볼모인가?

사실 발단은 한국e스포츠협회(이후 협회)가 제공했다. 최근 협회 소속 8개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곧 시작될 GSL 시즌4의 예선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프로리그 일정과 각종 국내외 이벤트 대회들이 겹쳐 있어 일정을 빼기가 곤란하다는 것. 하지만 이후 열리는 GSL 대회는 나갈 예정이라는 원칙에는 합의를 했다.

이는 그동안 GSL에만 출전하고 있었던 e스포츠연맹(이후 연맹)의 반발을 불러왔다. 연맹 소속 선수들은 스타리그 예선에 참가, 8명이나 '옥션 스타리그' 본선에 출전시켰는데 협회는 당장의 GSL 대회 출전을 보류하면서 마치 일방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연맹은 스타리그 출전 보류라는 초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당초 우려와 기대 속에서 양측의 선수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진검승부를 펼치는 상징적인 이정표로서 열릴 예정이던 '옥션 스타리그'에 애꿎은 불똥이 튀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 차려진 잔칫상을 뒤집어 엎을 셈이다.

현재로선 스타리그를 볼모를 잡고 있는 연맹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스타리그는 이미 구도가 짜여진채 개막전을 기다리고 있지만 GSL 시즌4는 아직 예선조차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스타리그 파행을 막기 위해 협회는 긴급 회의를 가진 후 지난 24일 'GSL 시즌5부터는 출전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맹은 협회 선수들의 시즌4 출전 없이는 스타리그에 나가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얘기다.


예고된 비극

이번 일은 앙금이 씻기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봉합됐기에 언젠가는 나타날 비극이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만든 블리자드가 지적재산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협회를 비롯한 한국 e스포츠계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고, 그래텍을 앞세워 GSL이라는 대회를 만들어서 지원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 때 GSL에 출전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모여 연맹을 만들었고, 당연히 협회와 좋은 관계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4월 블리자드와 그래텍, 그리고 협회가 그동안의 대립관계를 끝내고 '스타2'를 이용해 e스포츠 부흥을 도모하자는 비전 선포식을 열면서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양측의 거리감은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협회로선 소속 8개팀에다 방송 중계권자인 온게임넷, IEG 등의 사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반면 연맹 역시 존립기반을 제공한 그래텍에 신의를 지켜야 했던 것. 해외 중계권 등에 대한 양측 사업권자들의 이해 관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아직 '스타2'에 익숙치 않은 협회 소속팀 선수들이 스타리그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GSL 출전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연맹측은 과거 그래텍이 '곰TV 클래식'이라는 개인리그를 만들었을 때 협회 다수의 팀들이 불참하면서 결국 실패한 사례까지 언급, 앙금이 남아 있음을 스스로 밝혔다. 연맹 회장인 스타테일 원종욱 감독은 "GSL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에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시인했다.

영원한 평행선?

문제는 양측이 '치킨게임'으로 치달을 경우 다시 접점을 찾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스타리그를 주최하는 온게임넷측은 27일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온게임넷 관계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라 다양한 해결책을 강구중이다. 연맹 소속 8명의 선수를 모두 부전패로 처리하거나, 협회 소속 선수 8명을 새롭게 선발하는 것 등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고 있다"면서도 "이럴 경우 향후 연맹 선수들은 스타리그에 참가하기 힘들 것이다. 또 타이틀 스폰서에도 이해를 시키기 힘든 상황이다. 대회 존립 자체가 심각해졌다"고 토로했다.

원종욱 감독은 "스타리그 파행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면서도 "예전처럼 스타리그와 GSL이 따로 운영이 되는 한이 있어도 현재로선 양보는 없다"는 입장이다. e스포츠 팬들은 원인을 제공한 협회, 그리고 타협점을 찾기 거부하는 연맹을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e스포츠 전문가들은 "조금씩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타리그 불참은 곧 GSL의 불참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예전처럼 영원한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며 "그러면 한국 e스포츠의 부흥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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