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펼쳐놓을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수많은 남성들은 아마 기자를 부러워하며 질투할 지도 모르겠다. '마이더스'(SBS) 첫 방송도 부산으로 촬영하러 내려가는 차 안에서 봤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민정과 반나절 동안 정답게 길거리 데이트를 했다. 그러나 너무 배 아파하진 마시길. 본 기자, 여자다. 사실 이민정을 만나기로 한 건 '마이더스' 촬영장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촬영이 지연되면서 반나절의 틈이 생겼고, 하필이면 그날 유난히 햇살이 밝고 따뜻했다. 성큼 다가온 봄기운이 아까워서, 인터뷰 대신 산책이나 하자며 대본을 쥔 이민정의 손목을 이끌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섰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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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이민정이 떴다
어렵게 생긴 휴식을 빼앗았는데도 이민정의 얼굴은 봄햇살처럼 밝고 싱그러웠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어느 한 가게 앞. 이민정이 걸음을 멈추더니 밖에 내놓은 세일 상품을 구경한다. 어느새 이웃의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이민정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친구들과 신사동이나 삼청동에 가는 걸 좋아해요, 요즘엔 바빠서 나와본 적이 별로 없지만." 아쉬운 듯 걸음을 옮기는 이민정에게 근처에서 눈에 띈 한 옷가게에 들어가보자고 제안했다.
날씨 덕인지 유독 운이 좋다. 그 가게의 옷들이 이민정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것저것 둘러보는 손길이 즐겁다. 디자인을 살펴보며 "예쁘다"를 연발하고, 거울 앞에서 옷을 몸에 대보기도 한다. 스카프, 머리핀, 선글라스에도 관심이 쏠린다. "저는 옷도 잡식이에요. 드레시한 옷도 무척 좋아하는데, 평상시엔 역시 편안한 트레이닝복이 최고죠."
그런데 이민정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까? "아니에요. 쇼핑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해요. 그런데 과소비는 안 해요. 경제관념은 정말 뚜렷하죠. 배우 하기 전에도 적금 통장이 있었는 걸요? 대학교 등록금도 아르바이트하고 연극하면서 직접 벌었고요." 놀라서 입이 턱 벌어지자 이민정이 똑소리나게 덧붙인다. "어릴 때 아빠 구두 닦고 세뱃돈 받고 심부름 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500만원을 모았어요. 집 살거라면서 그 통장을 엄마 드렸는데, 아직 저에게 돌아오지 않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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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아이쇼핑을 했으니 슬슬 허기가 몰려올 때다. 거리를 걸으면서 지나친 한 떡볶이 가게가 생각났다. "아, 거기 제가 엄청 좋아해요. 그동안 바빠서 주로 배달해 먹었는데, 함께 가실래요?" 떡볶이, 순대, 어묵을 마주한 이민정의 눈빛이 빛난다. 카메라 셔터 소리도 아랑곳없이 맛있게 먹는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네요. 얼마만에 길거리에서 먹어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기자님도 어서 드셔보시라니까요." 때마침 식당에 손님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민정 덕에 손님이 많이 온다며 껄껄 웃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흥겹다. "이건 제가 살게요." 마침내 이민정의 지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봐도 두둑하진 않은 게 알뜰한 그녀답다.
가게 사장님이 쑥스럽게 내민 종이에 사인을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민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보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쩌면 좋아요. 하하하. 잠깐 들른 것뿐인데, 제가 떡볶이 먹는 모습을 봤다는 문자 메시지가 여러 통 왔어요. 최정윤 언니부터 제일 친한 친구까지. 아이고, 무서워. 제가 연애하면 제 남자친구가 참 좋을 거예요. 지금처럼 지나가다가 저를 본 사람들이 남자친구에게 다 알려줄 거 아니에요? 저는 남자친구 손바닥 안에 있는 거죠. '너 그때 내 전화 안 받고 어디 있었지'라고 물으면 어떡해요. 허튼 짓을 못하겠는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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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리를 옮긴 곳은 인근의 한 카페. 이민정이 좋아하는 곳이란다. 이민정의 얼굴을 본 가게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붉어진다. 대화하기 좋으라고 음악 볼륨까지 줄여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민정은 엄청난 음악 마니아다. 촬영 중 시간이 생겼을 때 주로 음악을 듣는다. "엄마가 피아노를 전공하시고 저도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오빠도 록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과 가까운 환경이었죠." 그러고 보니 옷가게에서도 매장에 흘러나오는 리한나의 노래를 따라부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저는 음악도 잡식인가 봐요. 제 아이팟으로 음악을 틀어놓으면 다들 깜짝 놀라요. 데미안 라이스가 나오다가 메탈리카가 나오다가, 난데없이 쇼팽의 교향곡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지금까지 모은 CD가 얼마나 많은지 몇 번을 버렸는데도 카페의 벽면을 다 채우고도 남는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요즘엔 '파 이스트 무브먼트'를 좋아해요. 얼마전 빌보드 1위를 했죠. 빅뱅도 좋고, 지드래곤과 탑의 유닛 음악도 좋아해요."
반나절 동안의 나들이를 마무리하며 올봄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낼 이민정에게 잠깐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다. "친구들과 김밥 싸들고 공원에 가고 싶어요. 예전에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갔다가 피자를 시킨 적이 있어요. 그런데 배달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 CF가 감옥까지 배달해준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감옥에는 가면서 공원에는 안 온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하하하. 한참 실랑이하던 생각이 나네요." 밝은 웃음처럼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이민정의 봄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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