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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는 자부심이었다" 이강철이 말하는 '해태 정신'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7-01-11 18:53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시절 이강철. 스포츠조선DB

강렬한 빨간 상의에 검정 바지.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돌격대. 상대 팀들은 "빨간색만 봐도 지긋지긋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해태 타이거즈는 강팀의 상징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김성한 이순철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종범 등 '스타 플레이어'를 수 없이 배출한 팀. 김응용 감독이 이끌었던 해태는 KBO리그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전설의 팀이다.

연봉이 많지도 않았고 보너스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명문 타이거즈에서 뛰는 프로 선수'라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쳤다. 해태의 최전성기를 지나 KIA까지 두루 거친 이강철 현 두산 베어스 2군 코치(51)에게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종 대기록을 만들어낸 '언더핸드 투수의 교과서'는 즐겁게 해태를 추억했다.

신인에게 떨어진 불호령 "유니폼 입고 나와!"

이강철 코치는 해태에 신인으로 입단했던 1989년을 떠올렸다. "워낙 들은 이야기와 소문이 많아서 살벌하다는 생각에 무서웠다"며 웃었다. 1989년 해태 신인 중 가장 늦게 입단 계약을 마치고, 김응용 감독에게 인사를 하러 야구장을 찾았다. 그때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서 유니폼 입고 나와!"

이강철 코치는 "지금 같으면 신인들이 계약하고 처음 야구장에 오면 '축하한다','잘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나. 김응용 감독님은 '왜 사복을 입고 왔냐. 가서 유니폼 갈아입고 와라. 얼른 운동해라'가 첫 마디였다. 사실 그때 기가 확 죽었다"고 했다. 그때는 오금이 저리게 무서웠지만, 지금은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해태에 입단했다는 실감이 난 순간이기도 하다.

엄격한 코끼리 감독님 밑에서 프로 첫 시즌 준비. 이강철 코치는 "솔직히 전지훈련에서만 해도 선배들이 다들 설렁설렁하는 분위기라 의아했다. '우승팀이 뭐 이래?' 싶었다"고 했다.

팀 분위기는 정규 시즌 개막과 함께 확 바뀌었다. 이강철 코치는 "지금도 개막전에 맞춰 돌변한 선배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증언했다. 훈련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대충, 웃으며 하는 것 같아도 시즌이 시작되면 해태 선수단에 전운이 감돌았다.


"상대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돌변하는 것을 보고 '이게 강팀이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지금 생각해도 멋있는 사람들이다. 시즌 시작과 함께 호랑이가 되는 것 같았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더 했다. 내가 정말 해태 선수가 된 느낌을 받았다. 운 좋게 입단 첫해에 우승을 했으니 더 기분이 남달랐다." 추억을 되짚는 이강철 코치의 목소리에 여전히 그 때의 흥분이 묻어있었다.


김응용 감독. 스포츠조선DB
해태라는 이름의 자부심

무엇보다 해태 선수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은 팀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이강철 코치는 "그때 상대 팀이 우리를 보면 '아 쟤네 또 왔냐. 정말 짜증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선수들끼리는 친하게 지내서 직접 들은 것은 많지 않은데, 소문이 돌고 돌아 우리 선수 귀까지 들어왔다"고 말했다.

당연히 광주에서는 해태 선수들이 '최고의 스타'였다. 1983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까지. 1980년대에만 총 5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던 광주시민들을 위로했던 것이 해태의 야구다.

이강철 코치는 "나는 체격도 호리호리하고 피부도 하얀 편이라 혼자 다니면 내가 해태 선수라는 것을 못 알아봤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주민등록증을 내민 적도 있다. '내가 이강철입니다'라고 했는데, 안 믿어서 그랬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광주 시내에 나가면 '아이돌' 대접을 받았다. 음식점에서는 '서비스'라며 추가 음식을 내오고, 택시 기사들은 요금을 받지 않았다. 기사들은 "해태 선수를 태우게 돼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해태는 무섭다? 군기에 대한 오해

사실 해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엄한 군기'다. 팬들도 모두 해태의 엄격한 분위기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해태에 입단하는 신인들은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그 이미지는 KIA로 바뀐 후까지도 남아있었다. 최근에야 옅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KIA는 선수단 군기가 가장 빡빡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강철 코치는 "오해가 있다. 김응용 감독님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있었다. 선수단 군기도 오히려 다른 팀 선수들이 '무섭다'고 하지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기 할 일 잘하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선배들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프로 선수로서 생활 관리에 엄격했을 뿐이다. 외출이나 훈련 시간을 어겼을 때, 술을 몰래 많이 먹다가 들킨다던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엄히 단속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해태에서 그런 생활 습관을 몸에 익혔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해태의 고참들이 가장 용납하지 않은 것은 그라운드에서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다. 이강철 코치는 "야구장에서 자기 야구를 마음껏 하는 것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가 가진 야구를 존중한 곳이 해태다. 하지만 난타를 당했다고 투수가 고개를 숙이고 덕아웃에 들어오고, 안타를 못 쳤다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면 선배들이 혼을 냈다. 자신의 플레이를 못 했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폭력으로 군기를 잡은 것이 아니다. 최고참급 선배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주로 고참급에서 중간급으로, 중간급이 다시 신인급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이었다. 선수들이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프로답지 않았을 때 경기 후 소집이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해태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것이 '해태 정신'이었다. 이강철 코치는 "그래서 해태 선수들이 대부분 오랫동안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후배인 이종범, 홍현우 같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신인 때부터 선배들로부터 프로의 자세에 대해서는 엄격히 배웠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성한 2001년 당시 해태 감독과 선수단. 스포츠조선DB
2인자의 설움.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았다"

이강철 코치는 현역 시절 4년 연속 15승, 10년 연속 10승, 10년 연속 100탈삼진 등 주요 기록들을 세웠다. 훗날 송진우가 기록을 대부분 경신했지만, 은퇴 당시까지 KBO리그 역대 최다승, 최다 탈삼진 등의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2인자'라는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해태에는 너무나 강력한 투수, KBO리그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철 코치는 "나름대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해태에 잘하는 투수가 너무 많아서 표시도 안 났다. 그래서 내 목표가 점점 커졌다"고 했다. "정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을 때 서러움도 있었다. 올스타도 한번 뽑혀보고 싶었는데 늘 동열이형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더 큰 목표를 세웠다. 내가 더 오래 잘할 수 있었던 원인이 아닐까 싶다. 개인 타이틀은 못 따더라도 한국시리즈 MVP만큼은 꼭 한번 받고 싶었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다.

목표를 이뤘다. 1996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면서 선수 이강철이 세운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한국시리즈 MVP의 무게감이 컸다. 10년 연속 10승 기록까지 세운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즐비한 해태라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해태 타이거즈를 만날 수 있을까?

해태왕조가 막을 내린 후에도 강팀들은 존재했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가 왕조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80년대 해태는 더 강렬한 느낌이 있다.

이강철 코치는 "지금은 워낙 선수들의 연봉도 높아지고 대우가 좋아져서 그때 해태 같은 팀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 본다. 하지만 굳이 '헝그리 정신'이 아니어도 강팀의 조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해태 선수들은 프로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 후배들도 해야 할 일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만큼 걸맞은 행동을 하고, 옷차림이나 사생활, 자제심을 지켜야 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더 좋은 시절이 왔으니 우리 선수들도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게 강팀의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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